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23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정계 은퇴를 요구,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이상득 의원은 이날 미리 박 원내대표의 연설문을 입수해 읽어본 뒤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격분한 친(親) SD계 의원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구제역, 전·월세 대란,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개헌, 한·미 FTA 등 현안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을 조목조목 밝혔다. 특히 개헌에 대해서는 "이미 실기(失機)했다. 18대 국회에서 개헌이 논의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현안에 대한 연설 끝 무렵 그는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는 "이런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영일대군, 만사형통으로 불리며 국정 곳곳에서 대부 역할을 하는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권력의 핵심을 장악한 특정지역 인사들의 배후에 있는 사람은 누구였습니까"라고 이상득(SD) 의원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한나라당 의원석에서 즉각 야유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병석 의원(포항 북구)은 "당신이 뭘 알아. 당장 내려와"라고 외쳤고 이은재 의원(비례대표)은 "특사범으로 감옥까지 갔다 온 사람이…. 당신이 먼저 은퇴하라"고 했다. 장제원 의원(부산 사상)은 삿대질을 하며 "왜 인신공격을 해.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라고 소리친 뒤 퇴장해 버렸다. 민주당 의원들도 지지 않고 "잘한다", "포항, 조용히 해"라며 되받아쳤다.

장내가 소란해지자 잠시 말을 멈춘 박 원내대표가 다시 "3년 연속 예산안을 날치기하면서 1조원 이상의 예산을 챙겨간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하자, 강석호(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권택기(서울 광진갑) 의원 등이 "당신도 (지역구) 목포에 20억원을 갖다 줬잖아. 대답해"라고 고함을 지르며 가세했다. 이날 본회의장에서 이상득 의원을 엄호하고 나선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부분 '영포(영일·포항)라인'이거나 이 의원과 친분이 깊은 의원들이었다.

연설을 겨우 마친 박 원내대표는 본회장을 나서며 "대통령 비난하면 아무 소리 안 하다가 형님을 비난하니깐 원성이 나왔다. 이로써 권력 서열 1위가 밝혀졌다"고 말했다.

◆朴 "18대 국회에선 개헌 없다"

최근 여권에선 이상득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잠잠해진 상태다. 이 의원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며 거리를 둬 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 원내대표가 이 의원을 '직공(直攻)'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박 원내대표는 보좌진이 작성한 초고에 없던 이 의원 관련 내용을 직접 넣었다고 한다. 이 의원의 실명 대신 '형님'이란 표현을 썼으나, 이명박 정부의 각종 문제의 근원을 '형님'에게 돌리면서 공세 수위를 한껏 높였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박 원내대표가 여권의 분열을 노리고 개헌에 이어 이 의원을 공격한 것 같다"고 했고 다른 한나라당 의원은 "이상득 의원을 둘러싼 구설이 잦아들자 이를 재생해 보려는 전형적인 박지원식 진흙탕 정치"라고 비난했다. 이 의원 본인은 "늘 되풀이하는 헛소리이자,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입지를 다지려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은 계파에 상관없이 박 원내대표의 연설 후 그의 사무실을 찾아 "속이 시원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5월에 임기가 끝나는 박 원내대표는 올해 말 당 대표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