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에 침입했던 '괴한'들은 국가정보원 직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 직원들은 특사단 일행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로 떠난 직후인 16일 오전 9시 반 무렵, 특사단장 보좌관 객실에 침입해 노트북 컴퓨터를 뒤지다, 객실로 돌아온 보좌관과 마주치자 사라졌었다. 인도네시아는 국정원 관련 사실을 파악했으며,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는 21일 외교통상부를 방문해 항의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수집하려던 정보는 국산 고등 훈련기인 T-50 수입을 검토 중인 인도네시아의 가격 조건 등 내부 협상 전략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T-50은 인도네시아의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을 앞두고 러시아 Y-130과 막판 경합 중이다.

국정원은 '국익(國益)'을 위해 이번 일을 꾸몄다고 변명할지 모르겠으나, 결과는 정반대로 심대한 국익 손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 방산(防産)수출 사상 최대 규모인 10억달러 상당 T-50 협상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10번째 교역 대상국이자 6번째 투자 대상국인 인도네시아와의 관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서울 외교가는 벌써부터 "한국 국정원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국가 정보기관이 해외 특사단이 자기 나라 대통령을 예방하는 시간을 틈타 숙소를 뒤졌다는 '부도덕성'과 동네 흥신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설픈 첩보활동을 벌이다 들켰다는 '무능함'이 동시에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작년 6월엔 리비아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이 현지어를 하지 못해 통역(通譯)을 낀 정보활동을 하다가 리비아 당국으로부터 간첩 활동을 했다는 의심을 샀다. 이 일로 해당 국정원 직원은 추방되고 서울주재 리비아 경제대표부가 일시 철수하는 등 한·리비아 관계가 최악의 위기를 맞았었다.

국정원이 대북 첩보활동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작년 3월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해 국정원은 사전에 징후(徵候)를 포착하지 못한 것은 물론, 사후에도 북 소행이 아닌 쪽에 초점을 맞춰 대통령의 초기 대응에 혼선을 줬다. 작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때는 국회에 "북의 공격 계획을 3개월 전 입수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며 책임을 청와대에 미루는 듯한 보고를 했다가 청와대가 발끈하자 "구체적인 정보가 아니었다"고 발을 뺐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국정원은 정보 수집능력도, 정보 판단능력도 수준 이하다. 나라 지키는 데는 아무 역할도 못하고, 국익을 위한답시고 나서는 일마다 사고를 쳐 그 뒷수습에 국가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든다.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보 노하우가 전혀 없는 지방행정가에게 지휘봉을 맡겼을 때부터 예견됐던 사태다. 대통령은 국정원 지휘부를 전면 개편하거나, 그것이 내키지 않다면 지금부터 국정원은 아무 일도 벌이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는 편이 국익을 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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