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커피는 됐고 티켓이나 한장 끊어주시라요"

조선일보
  • 특별취재팀
    입력 2011.02.19 03:03 | 수정 2011.02.20 05:38

    수지 풍덕천에 탈북여성·조선족·한족 아가씨 '다방촌' 성업… 마치 연변 거리 온 듯

    한족·조선족·탈북여성 200여명이 일하는 풍덕천 다방은 새벽까지 영업을 했다. 낮 손님보다 밤 손님이 많았고, 커피 보다는 사람을 파는 곳에 가까웠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17일 오후 6시 경기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로 뒷골목. 좌우로 늘어선 2, 3층짜리 건물의 지하마다 다방이 있었다. ○○다방, ××다방, △△다방, □□다방….

    400m 남짓한 골목에 어림잡아 20여개의 다방 간판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이른바 '풍덕천 다방촌'. 시골도 아닌 서울의 베드타운 용인 수지에 왜 다방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H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옅은 붉은 조명 아래 6개 남짓한 칸막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자신을 은숙(가명·24)이라고 소개한 여종업원이 자리를 안내했다. 그런데 그의 말투가 남달랐다. 북한 사투리였다. 은숙씨는 탈북자. 양강도(함경남도) 혜산이 고향으로 지난해 탈북자 교육 기관인 하나원을 퇴소하고 다방에 왔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이 다방에서 일하는 여종업원 6명이 모두 탈북자라 했다. 주인도 원래 탈북자였는데 얼마 전 남한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은숙씨는 "커피나 차를 시키지 말고 우리를 데리고 나가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며 "노래방, 술집, 승용차, 여관 어디든 따라가 줄 수 있다"고 했다. 출장성매매 업체의 원조격인 '티켓다방'과 유흥업소에 접대부를 공급하는 '보도방' 영업 방식이 혼재된 신종 업소인 셈이다. 시간당 '요금'은 2만~2만5000원이었고, 성매매를 하면 별도로 10만원을 받는 데 깎아주기도 한다고 했다.

    여종업원 1인당 하루에 3만원을 '사납금(社納金)' 형식으로 주인에게 내고 남는 돈은 종업원이 갖는 이익 분배 구조였다. 젊고 예쁜 여종업원은 한 달에 400만~500만원을 번다고 한다. 은숙씨는 "다른 다방에도 탈북여성들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경찰서에서 탈북자들을 개별 관리하고 있지만 전화가 오면 '잘 지내고 있다'고 대답하면 이곳에서 일하는지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웃한 K다방에선 중국말이 들렸다. 여종업원 7명 모두 중국 한족(漢族)이거나 조선족이었다. 석사 출신으로 유명 사립대에 교환학생으로 유학 온 한족 출신 수아(가명·25)씨는 두 달 전부터 이곳에서 일한다고 했다. 조선족 주인은 "수아가 늘씬하고 예뻐서 노래방 손님에게 인기가 꽤 많다. 한번 데리고 나가라"고 권했다. 한국말이 서툰 수아씨는 "중국 친구 소개로 다방에 왔다. 방학을 이용해 용돈을 벌고 있다"며 "한국 업소에 잘못 가면 엉뚱한 곳에 팔려갈 수 있어 이곳에서 일한다"고 했다.

    또 다른 한족 출신 민아(가명·29)씨는 중국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국내 한 사립대학에서 박사 과정에 다닌다고 했다. 그는 "아직 손님과 호텔에 간 적은 없지만, 큰돈 벌려면 가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노래방에서 몸을 마구 더듬는 한국 손님들이 많아 불편하다"고 했다.

    S다방에서 만난 조선족 여성(35)은 "중국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30만원밖에 벌지 못하지만 다방에서 일한 뒤로 한 달 300만원 이상은 벌고 있다"고 했다. 이 여성은 중국에서 조선족 남편과 결혼해 세 살짜리 딸을 뒀지만 지난해 혼자 한국으로 왔다.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던 이 여성은 "우린 커피 팔아서 돈 버는 게 아니다. 돈 있으면 데이트나 하자"고 여러 차례 간청했다.

    근처 다방 7, 8군데를 더 찾았지만 한국 출신 종업원은 보이지 않았다. 이 일대는 중국인·조선족·탈북녀로 구성된 유례를 찾기 힘든 성매매촌이었다.

    풍덕천 다방촌은 밤 9시가 넘어가자 피크를 이뤘다. 다방에서 여종업원들이 자취를 감췄고 대부분 외부에서 '영업 중'이었다. 영업장소는 주로 인근 노래방과 100m쯤 떨어져 있는 모텔촌. 한 다방 주인은 "낮 1시에 문을 열지만 주로 밤 시간대에 돈을 번다. 새벽 3시까지 영업하는데 아침까지 (손님과) 자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한 여종업원은 "주말과 휴일을 가리지 않고 손님이 많다"고 했다.

    손님 역시 '다국적'이었다. "다소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다" "북한 여자가 나온다"라는 소문을 듣고 서울에서 내려온 한국 남성들부터 외국인 근로자까지 여러 부류가 다방촌을 찾는다고 했다. 중앙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30대 남성은 자신이 찾는 여종업원이 없자 K다방의 문을 열고 나가기도 했다. 40대 여종업원은 "그래도 돈 있는 한국인 손님이 가장 많다"며 "용인뿐 아니라 서울 경기 일대에서 소문 듣고 찾아온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일부 남성 중에는 성매매를 하고도 돈을 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여종업원의 '출신 성분'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라는 것이다. 한 중국인 여종업원은 "1시간 요금(2만원)만 받고 따라나섰다가 2차비를 받지 못했다"며 "항의했더니 '신고하든지 맘대로 하라'고 해서 울면서 돌아왔다"고 했다.

    이 지역이 다방촌으로 바뀐 것은 2, 3년 전부터. 그 이전엔 서너 군데밖에 영업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 한 노인은 "다른 가게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더니 이내 다방으로 간판을 바꿔 다는 거야. 그러다 이렇게 되어 버렸어"라고 했다. 풍덕천로 바로 뒷골목에만 20군데가 영업 중이었고 주변 골목까지 더하면 이 일대 40여개 다방에 여종업원 200여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업소들의 은밀한 영업 방식 때문에 이웃 주민 중엔 다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식당 주인은 "시골 다방처럼 오토바이나 차량을 이용해 커피 배달을 가는 것이 아니라, 여종업원 한둘씩 짝지어 노래방 도우미로 가거나 '애인 대행'을 하고 있어 주민들이 잘 몰랐던 거다. 나도 얼마 전까지 커피 파는 집으로 알고 있다가 최근 뭐 하는 곳인지 알게 됐다"고 했다.

    다방들은 '협회'까지 만들어 경찰의 단속 정보를 공유한다고 했다. 불과 50m 거리에 수지소방서가 있고, 100m 거리에 경찰 지구대가 있는데도 말이다. 한 여종업원은 "손님과 성관계를 가질 경우 정액 묻은 피임기구만 걸리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교육을 받고 일한다. 단속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취재팀이 다방촌 골목을 4회 왕복하는 동안 경찰 순찰차와 두 번을 마주쳤고, 그 순간에도 다방에서 나온 짙은 화장을 한 여성 2명이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었다.

    "南이 준 임대 아파트만으론 못 살아요… 北 나올 때 브로커에 진 빚 갚아야지, 생활비 벌어야지"

    '다방촌'서 만난 탈북여성 미진씨

    풍덕천 '다방촌'에서 만난 탈북여성 미진(가명·24)씨. 검은 스타킹과 검은 부츠 차림에 긴 생머리를 가졌고 손톱엔 옅은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다. 최신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연신 문자를 보내는 모습은 남한의 또래 여성과 다를 바 없었다.

    미진씨는 지난해 얼어붙은 두만강을 이용해 북한을 탈출했고, 중국과 제3국을 거쳐 한국에 왔다. 그는 "탈북자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퇴소한 뒤 지방 한 도시에 임대아파트를 배정받았지만 북한 나올 때 도움 준 브로커에게 줄 돈 300만원과 가족에게 보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다방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함경도에서 살았다는 미진씨는 "아버지가 외항선 선원으로 일해 1990년대 중반까진 풍족한 생활을 했으나 배가 고장이 나면서 집안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당시 북한 생활상에 대해 미진씨는 "고난의 행군 기간과 겹쳐 돼지에게나 먹였던 죽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고 했다.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친척집을 전전하다 혼자 북한을 탈출했다는 것이다.

    미진씨는 현재 다방 한쪽에 마련된 쪽방에서 탈북 여종업원들과 생활하고 있고, 방이 비좁아 일부 동료들은 소파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그는 "여종업원 대부분이 아는 사람이나 지역정보지를 보고 이곳에 온다"며 "혹시 나쁜 일을 당할 수 있어 한국 업소보다 탈북자들끼리 일하는 이 다방이 마음 편하다"고 했다.

    미진씨에게 커피와 쌍화차를 연거푸 2잔 시켜줬으나 반응이 시큰둥했다. 커피 한잔(3000원) 팔아봐야 300원이 자신의 몫이고 손님이 자신을 데리고 나갈 때 받는 티켓비(2만~2만5000원)로 사실상 돈을 번다는 것이었다.

    그는 '손님 따라가면 몸에 손을 대거나 성관계를 요구받지 않느냐'는 물음에 오히려 "이런 데 오는 사람들 다 뻔하지 않으냐. 다 알면서 뭘 묻냐"고 되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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