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지방법원 파산부(破産部) 재판장이 지난달 26일 증권회사 지점장을 지낸 친형을 자기 재판부가 담당하고 있는 법정관리 업체의 감사로 선임하고 월 급여를 500만원으로 정했다가 입소문이 퍼지자 지난 14일 감사 선임을 취소했다. 법원은 법정관리 기업에 관리인과 감사 등을 선임해 파견하고 이들의 급여도 정한다. 파견된 감사의 임무는 기업 회생 과정을 감사해 법원에 보고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동생은 법정관리를 결정하고 형은 그 업체의 감사를 맡는 형제(兄弟) 분업을 한 셈이다.
이 법관은 "법정관리 업체를 제대로 감시·감독하기 위해선 재판부가 믿을 수 있는 사람 중에서 감사를 선임하는 것이 관례"라며 "오해받을 소지가 있지만 형이 증권회사에 오래 근무해 기업 회계 업무를 잘 알아 감사 업무의 효율성을 고려해 선임했다"고 말했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법관 동생이나 그 동생 밑에서 한자리하겠다는 형이나 수준 이하이긴 마찬가지다. 체면도 염치도 도덕도 모두 집어던진 것이다. 법정관리 업체 관리인이나 감사 자리 하나 차지하려고 목을 거는 금융회사 퇴직자들이 밀려 있어 이들을 재훈련시키는 기관의 입학 경쟁이 치열한 실정이다. 법관은 자기가 맡은 사건의 소송 관계자가 혈연·지연·학연으로 연결될 경우 그 사건 재판을 회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친형을 앉힌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게 요즘 법관의 상식이란 말인가.
대법원은 며칠 전 법관이 실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을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한 350쪽의 '법관 윤리' 책자를 펴내 전국 법원에 보냈다. 법관이 어떤 경우엔 변호사와 골프를 해도 되고 어떤 경우엔 안 되는지, 법정에선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내용이 담겨 있다. 요즘 법관 수준이 그런 자질구레한 상식까지 알려줘야 할 정도란 말인가 하고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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