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월드컵 그후 6명 중 4명 '자립의 길로'

  • 이지은 인턴기자
    입력 2011.02.14 11:13

    “잡지를 사 가는 분들이 제게 힘을 줍니다. 감기 걸리지 말라고 유자차를 주는 분도 있고, 한 번에 10권씩 사 가는 분들도 계세요. 의지가 약해질까봐 대회에서 받은 메달을 지금도 목에 걸고 다니고 있어요.”

    오현석(42)씨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 근처에서 대중문화 잡지 ‘빅이슈’ 판매원으로 생활하며 고시원에서 지낸다.

    한 때 노숙인이었던 그가 잡지 판매원으로 자립하는 데는 지난해 9월 브라질에서 열렸던 ‘홈리스(노숙인) 월드컵’ 축구대회가 계기가 됐다. 이 대회에 출전해 한국 팀의 첫 골을 기록했던 오씨는 “대회 참가 이후 자신감이 커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졌다”고 했다.

    오현석씨가 "노숙인에게 희망을 주는 빅이슈" 라고 크게 외치며 활기차게 잡지를 팔고 있다. (사진 왼쪽) 요양 병원에 입원중인 배윤식(50)씨는 “꼭 나아서 다시 잡지를 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오른쪽) /이지은 인턴기자
    홈리스 월드컵은 노숙인 문제를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시작된 대회다. 지난해 제8회 대회에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출전해 1승10패의 성적을 거뒀다.

    이 대회에 참가했던 노숙인 6명 가운데 4명이 현재 ‘빅이슈’ 판매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명은 게임,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노숙 생활로 돌아갔다.

    오씨는 보일러 회사 취직을 목표로 고압가스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그는 “오랜 노숙 생활로 연락이 끊어진 어머니를 찾고 임대 주택에 입주하고 싶다”고 했다.

    “예전에는 주변에서 노점을 하는 상인들이 경계했지만 제가 먼저 웃으며 인사하고 짐도 들어 드리니까 이제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됐지요. 잡지를 팔 때마다 손님들에게 ‘제게 희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배윤식(50)씨도 오씨와 마찬가지로 빅이슈 판매원으로 활동한다. 지난해 12월 길에서 갑자기 쓰러진 그는 뇌종양 수술을 받고 현재는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배씨는 빅이슈 ‘이달의 판매왕’에 올랐고, 서울시 노숙인 저축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지금은 말이 어눌해지고 오른팔이 마비됐지만 배씨는 “반드시 빅이슈 판매원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는 잡지를 판매할 때 입는 붉은색 조끼를 환자복 위에 입고 있었다.

    한국은 지난해 대회에서 1승10패라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최우수 신인팀’ 상을 받았다. 이 상은 처음 출전한 팀 가운데 가장 뛰어난 투지를 보여준 팀에게 돌아간다.

    1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브라질 ‘용병’을 쓴 덕이다. 선수단을 8명으로 구성해야 하는데, 노숙인 무료 급식소 등에서 모집한 선수가 6명 밖에 없었다. 한국팀을 지도했던 조현성(29) 코치는 “브라질 선수 2명을 ‘용병’으로 썼는데, 이들의 기량이 뛰어나 초반 경기에서 손쉽게 승리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승리는 의미가 없다”는 선수들의 의견에 따라 3번째 경기부터는 브라질 선수들을 선발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9경기를 내리 졌다. 20대1, 14대1 등 큰 점수 차로 지는 경기도 많았다.

    조 코치는 “우리는 관중을 감동시켰다”고 했다. “우리 선수들은 평균 연령도 40대로 가장 높고, 체구도 작았어요. 아프리카나 유럽에서는 노숙인 리그를 운영하는 나라들이 있어서 진짜 축구 선수같은 사람들도 있었죠. 몸싸움을 할 때마다 우리 선수들이 튕겨나가고 다쳤지만, 붕대를 감고 끝까지 상대를 쫓아 다녔습니다.”

    조 코치는 “처음 만났을 때는 눈도 안 마주치고, 질문을 해도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는 분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연습을 할수록 (노숙인들이) 마음을 열고 웃기 시작했다”며 “운동을 통해 노숙인들의 자활 의지를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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