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7일 라디오 연설에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 시기를 결정하기에 앞서 산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원래 2013년 1월부터 도입키로 했던 배출권거래제를 '2013~2015년 중' 도입키로 방침을 바꿨다고 한다. 전경련 등 경제5단체와 산업계는 더 나아가 '도입 여부를 2015년 이후 다시 논의하자'는 건의문을 정부에 냈다.
기업들이 배출권거래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납득하기 힘들다. 작년 4월 시행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468개 온실가스 주요 배출기업에 대한 '목표관리제'가 내년에 도입된다.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한도(限度)를 정해놓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배출 상한선만 정해놓으면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가로 더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면 할당받은 배출 한도보다 배출량이 적은 기업은 절약분만큼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다. 배출권거래제는 기업이 배출권 시장에 팔기 위해 신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도록 촉진하는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기업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들이면 된다. 거래는 시장원리에 맡기므로 기업에는 여러 선택권이 주어지고 부담도 줄어든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과 삼성경제연구원은 직접 규제 방식 대신 거래제를 도입하면 기업 비용이 43% 이상 60%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추산했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으로 배출권거래제보다 탄소세(稅)가 더 낫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는 사실상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EU는 2005년부터 시행에 들어갔고, 미국·일본은 지역·지자체에서 시범실시 중이다. 우리도 가능한 한 빨리 도입해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 경쟁력을 키우는 데 유리하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 선도(先導)국가라고 자부해 왔다. 재작년엔 국제사회에 2020년까지 배출량을 배출전망치의 70% 아래로 떨어뜨리겠다는 약속도 했다. 우리는 에너지 효율이 일본의 3분의 1, OECD 평균의 2분의 1에 불과하다. 국제사회에 한 약속을 따질 것도 없이 에너지 효율 높이기에 경제의 명운이 달려 있다.
기업들이 기를 쓰고 배출권거래제를 반대하는 배경엔 온실가스 행정 주도권이 환경부로 넘어가는 걸 꺼리는 다른 부처의 입김도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의 앞날을 좌우할 일에 기관(機關) 이기주의가 끼어들어선 곤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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