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코피노 양산하는 공범들

입력 2011.02.06 22:20 | 수정 2011.12.15 15:09

이항수 홍콩특파원
작년 5월 필리핀 대통령 선거를 취재할 때 일이다. 수도 마닐라 시내 복판에 있는 마카티 고등학교 투표 현장을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짙은 화장에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필리핀 여자 둘이 우리 일행에게 바짝 다가와 저질스러운 한국말을 반복했다.

"빠구X 춘원."

무슨 뜻이냐고 묻자 그들은 섹스를 의미하는 손짓을 하며 "1000페소(약 2만5300원)"라고 했다. 아마도 누군지 모를 한국인이 필리핀 매춘부들에게 그런 손짓과 함께 한국어 '천원'을 'chunwon'이라고 써 줬고 이게 퍼져 '춘원'이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추측됐다. 대낮에 마닐라 복판의 고등학교에서 호텔까지 걸어오는 20분가량 그런 매춘부들은 서너 팀이나 나타나 한국말로 치근거렸다. 참담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매춘부들이 흥정을 걸어오는 대로변 양쪽의 번듯한 건물에 한국어로 '○○어학원' 'XX영어'라고 쓴 간판들이 즐비하고, 한국에서 온 무수한 10대와 20대 학생들이 그런 환경에서 공부한다는 사실이었다. 한 교민에게 "그런 매춘부들이 즐비한 곳에서 어떻게 학원을 열고 학생들이 다니느냐?"고 묻자 "한국 부모들이 이런 곳에 한 번만 와 보면 당장 자기 아이들을 데려갈 것"이라고 했다.

무책임한 현지 공무원들과 학원 관계자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국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방치한 사이, 영어를 배우러 온 한국 남학생들이 '사고'를 치는 경우도 급증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코리안과 필리피노를 합성한 '코피노(KOPINO)'라는 단어가 생겨나 '버려진 아이들'이란 뜻으로 통용될 정도다. 지난주 한 방송이 보도한 코피노 실태를 보면, 필리핀의 코피노가 7~8년 전 1000명에서 지금은 1만 명을 넘었고, 코피노 아빠는 대개 10대 후반~20대 초반의 한국 유학생들이라고 한다.

일부 남학생들은 필리핀 여자 친구를 사귀어야 영어가 빨리 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유흥업소 종업원이나 여학생들과 동거하는 경우가 많고 상대방이 임신하면 곧바로 줄행랑을 친다. 한 남학생이 여러 필리핀 여성을 임신시킨 경우도 있다. 이런 남학생들에게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코피노와 코피노 엄마들이 급증하면서 필리핀의 반한 감정도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코피노 아빠들을 추적해 '혼인빙자간음죄'로 처벌하면 적당할 것 같지만 2009년 11월 위헌 결정이 나면서 이 조항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현지 공관과 한인 단체, 한국의 인권단체들이 나서면 어떨까. 현지에선 피해자들을 만나 코피노 아빠들의 인적 사항과 행적을 최대한 모은다. 이를 넘겨받아 한국에선 도망 온 코피노 아빠들을 찾아내 위자료와 양육비를 받아내 전달하는 것이다. 코피노 아빠들에게 출입국 제한 등 각종 행정적 불이익도 줘야 한다. 무책임한 코피노 아빠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 한국 사회의 무관심도 코피노와 그 엄마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공범이란 인식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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