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발이가 여긴 왜 왔느냐'는 말에 한국대표 꿈 접은 이충성

입력 2011.01.30 11:27 | 수정 2011.01.30 15:45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일본과 호주의 결승전이 카타르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연장 접전끝에 천금같은 결승골로 일본을 우승으로 이끈 이충성(왼쪽)이 시상식에서 하세베 주장과 환호하고 있다. /(사진=스포츠조선)
30일 새벽(한국시각) 2011 아시안컵 축구대회 결승이 열린 카타르 도하의 칼리파 스타디움. 전후반 내내 치열한 공방을 벌이던 일본호주는 0-0 무승부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전반 7분, 일본의 자케로니 감독은 J-리그 득점왕에 빛나는 마에다 료이치(이와타) 대신 재일교포 4세 이충성(26·일본명 리 다다나리)을 투입했다.

이충성은 나가토모 유토가 왼쪽 측면에서 올려준 크로스를 놓치지 않고 왼발 발리슛을 날렸다. 연장 후반 4분, 사실상 우승을 확정하는 골이었다. 이충성은 곧바로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아 올리는 세리모니를 펼치며 데뷔골을 자축했다. 그의 유니폼에는 ‘LEE’라는 한국식 성(姓)이 새겨져 있었다.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 소속인 이충성은 도쿄 조선 제9 초급학교에 입학해 축구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축구 선수로 크기 위해 조선학교가 아닌 일본계 중학교로 진학했다. 일본계 중학교에서 그는 ‘조센진’으로 차별받았다. 빈 공간에 있어도 그에게 패스는 잘 오지 않았다. 이를 악물었던 그는 지난 2004년 FC 도쿄 1군으로 올라갔고, 당시 일본에서 뛰던 오장은(울산 현대)의 추천으로 한국 18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됐다. 오장은은 “(이충성이) 일본 대표보다는 한국 대표로 뛰고 싶다고 했다” 말했다.

그러나 경기도 파주에서 지냈던 합숙기간 동안 이충성은 ‘자이니치(재일 한국교포)’라는 자신의 존재를 아프도록 깨달아야 했다. 한국의 주변 동료는 자신을 ‘반쪽발이’라고 부르며 멀리 했다. 이충성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왜 반쪽발이 놈이 여기 왔느냐’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마음 아팠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그래도 일본인들보다는 한국인들이 제 편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해서 한국에 왔던 것이다. 파주에서의 일은 저의 세계관을 바꿔 놓았다”라고 밝혔다. 상처를 입은 그는 2005년 일본으로 돌아갔고, 한국 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접었다.

파주 합숙 훈련 후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혼란을 겪었다는 그는 2년 뒤 일본으로 귀화했다. 이충성은 당시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 서서 귀화사실을 알리고, 다만 이씨 성만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J-리그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돼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자케로니 일본 대표팀 감독은 뛰어난 골 결정력이 뛰어난 그를 이번 아시안컵 최종 명단에 포함했다.

이충성은 아시안컵 한일전을 앞두고 자신의 블로그에 “이번 대회 한국과 준결승, 어렸을 때부터 TV를 보거나 경기장에 발걸음을 옮겨 보러 가며 동경했던 양국의 경기를 앞두고 있다”면서 “기대되는 마음과 아픈 마음이 교차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날 결승전에서 팀을 승리로 이끈 자케로니 일본 감독은 “이충성이 해 줄 거라고 믿었다”면서 “마에다 료이치를 제외하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이충성이 정말 잘해 줬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충성은 ‘슈가’라는 그룹으로 국내에서 활동했던 가수 아유미의 연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해 초 이충성과 아유미가 교제 중이라고 보도했다. 재일교포 3세 아유미는 2009년부터 일본에서 ‘아이코닉(ICONIQ)’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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