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1.01.29 08:34 | 수정 2011.01.29 10:54

전자레인지 없다더니… - 자택 압수수색서 나와… 사고 난 후에 샀다는 것도 거짓말
부모·여자 친구까지 속여 - "서울대 의예과 다녀요"… 실제로는 사이버대학 1년 중퇴
국과수 수사 결론에 대해 - "휴대폰이 내 손 떠난 후 증거 조작됐을 수 있다, 못 믿겠다"
'강압수사 한다' 경찰까지 협박 - 인권위 진정, 헌법소원, 언론에 알리고 노동단체와 회견
범행 일체 자백한 이후엔… - "좌파·노동단체 간부들이 피켓시위 계속하라고 부추겼다"

8개월 만에 자작극으로 밝혀진 '삼성 휴대전화 폭발사건'의 민원인이 수사를 받으면서도 국가인권위원회, 헌법재판소에 계속 민원을 넣어 경찰을 괴롭혔던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에는 자신 편을 들며 기자회견까지 열었던 모 좌파 기관과 노동운동 조직도 걸고 넘어졌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 뒤 '폭발했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이모(29)씨를 명예훼손과 사기 혐의로 지난 20일 구속했다. 이씨를 24일 경찰서 면회실에서 만났다. 이씨는 이날도 완강히 혐의를 부인했다. 주저하는 기색은 전혀 없이 오히려 기자를 설득하려 했다. "결코 휴대전화를 전자레인지에 돌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내린 '전자레인지에 가열한 것과 같은 상태'라는 결론에 대해서도 "휴대폰이 내 손을 떠난 뒤 증거가 조작됐을 수도 있으니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

이씨는 2008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8차례에 거쳐 노트북, 팩시밀리 등 각종 전자제품의 결함을 기업에 얘기하고 환불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뜻대로 안 되면 언론에 제보하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인터넷상에서 이씨는 '환불남'으로 비난받거나 '소비자 정의를 위해 대기업에 맞서 싸우는 의사(義士)'로 칭송됐다.

이씨는 “휴대전화가 폭발했다” 며 작년 7월부터 1인 시위를 벌였고, 일기 형식의 게시물〈사진〉을 인터넷 게시판에 꾸준히 올렸다. 그는“소비자가 무섭다는 걸 깨닫게 해주겠다” 고 했으나 자작극으로 드러나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씨는 “휴대전화가 폭발했다” 며 작년 7월부터 1인 시위를 벌였고, 일기 형식의 게시물〈사진〉을 인터넷 게시판에 꾸준히 올렸다. 그는“소비자가 무섭다는 걸 깨닫게 해주겠다” 고 했으나 자작극으로 드러나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그는 면회 중에도 "환불한 것이 죄는 아니지 않느냐"며 "이 사건과 과거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삼성이 은폐하는 내용을 모두 공개하고 인간적인 사과를 하길 바란다", "나는 어디까지나 약한 개인 소비자이지만 이제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내용에 대해 확인하자 경찰은 펄쩍 뛰었다. 이씨의 거짓말은 계속 진화했다는 것이다. 집에 전자레인지가 없다고 진술했다가 자택 압수수색에서 전자레인지가 발견되자 휴대전화가 터지고 난 이후인 9월에 산 것이라고 둘러댔다. 거짓말은 그의 지인이 경찰에서 "전자레인지는 수년 전부터 있었다"고 진술할 때까지 계속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여자 친구와 부모도 "2006년부터 서울대 의예과에 다니고 있다"며 속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모 사이버대학 1년을 다니다 중퇴했다.

자신을 수사하는 경찰도 이씨는 민원으로 압박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이 사생활을 침해하고 무리한 수사를 한다며 진정서를 냈다. 이 진정이 기각되자 해당 건을 담당한 인권위 조사관에 대한 진정을 냈다. 역시 기각됐다. 경찰이 진술거부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냈으나 또 각하됐다.

동시에 '경찰이 강압수사를 한다'는 주장을 각종 인터넷 언론에 제보하고 모 노동운동 단체와 기자회견까지 열었는데, 이런 행동은 효과가 있었다. 그는 '재벌에 맞서 싸우는 소비자운동가'처럼 비쳐졌다.

그가 가면을 벗은 것은 지난 25일 이씨의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가 사임 의사를 밝힌 뒤다. 해당 변호사는 "의뢰인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변호사 수임을 관뒀다고 해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떤 사정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변론에 문제가 생긴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이에 충격을 받았는지 이씨는 바로 다음날 범행을 자백했다. 그는 그동안 범행을 자백하지 못한 이유를 모 좌파 기관과 노동운동 단체 등의 탓으로 돌렸다. 그는 자신이 직접 써서 경찰에 낸 진술서에서 '처음부터 범행 사실을 시인하고 싶어도 이들 단체 고위 관계자들이 접근해 일인시위·피켓·생활비·변호사비를 대겠다며 물러서지 말라고 설득했다'고 썼다. '절대 구속되지 않는다', '진술 거부하라'고 일러줘 그대로 했다는 것이다.

이씨 사건은 '블랙컨슈머(Black Consumer)' 요소를 다 갖춘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블랙컨슈머는 보상금을 챙길 목적으로 악성 민원을 하는 소비자를 뜻한다. 이들의 심리는 복잡하다.

건국대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는 "불공정과 공정에 대한 강한 의식과 함께 나는 '약자'라는 심리가 블랙컨슈머의 마음에 들어 있다"며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억울함이나 지나치게 큰 기대치와 보상 심리가 깔려있다"고 했다. 하 교수에 따르면 여기에 '대기업과 관료문화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행동한다'라는 논리가 더해지면 '순교자'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이씨처럼 도를 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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