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나의 서양미술산책] [90] 자코메티의 '매달린 공'

조선일보
  • 김영나 서울대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2011.01.25 23:30

    인간의 꿈의 세계나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광기나 욕망, 콤플렉스, 환상을 예술의 영역으로 삼았던 움직임이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성행했다. 이 예술운동이 초현실주의다. 프랑스의 문인 앙드레 브르통의 주도하에 정예화된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조직적 운동으로 활약했다. 이들은 특히 가장 원초적 본능인 성(性)의 세계를 집요하게 추구하여 미술에서 금기시되어 온 거세, 변태, 수음 등의 주제까지도 다루기 시작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그때까지 도덕과 지성이 만들어낸 인습의 전통에 반발하고 인간 해방을 꿈꾸었던 것이다.

    스위스 태생의 조각가 자코메티(1901 ~1966)는 파리에서 작업을 하다가 브르통이 이끄는 초현실주의 그룹과 알게 되었다. 그는 당시 초현실주의는 무엇인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유일한 운동이라고 보았다. 자코메티가 이 시기에 주로 한 작업은 환기력 있으면서 수수께끼 같은 오브제(object) 작업이었다. '매달린 공'(1930년)에서는 네모난 상자형 프레임 속에 꼭대기에서 드리운 공 모양의 진자가 아래의 초승달 형태에 닿을까 말까 한 거리에 멈추어져 있다. 밑 부분이 약간 움푹 팬 공은 남성을, 초승달 형태는 여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히지만 그 반대로 보일 수도 있는 모호성을 가진다. 두 형태는 애무하는 움직임을 연상시키면서 서로 닿는 것을 기대하게 할 뿐 아니라 손으로 공을 더 내려오게 하고 싶은 충동조차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한편 날카로운 초승달 형태가 둥근 공을 잘라낼 수도 있다는 불안함을 가지게 한다. 사랑과 폭력이 동시에 보이는 이 매혹적인 구조물은 브르통의 관심을 끌었고 자코메티는 공식적인 초현실주의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자코메티에게 초현실주의는 젊은 날의 일시적인 관심에 그쳤다. 그는 1935년에 다시 사실적인 인물 두상과 조각으로 돌아섰다. 브르통은 "인물상은 더 이상 할 게 없지 않나"라고 화를 냈고 그를 초현실주의에서 파문시켜버렸다. 가늘고 길게 늘어진 형상의 인물조각들은 이후 자코메티의 생애 후반을 거의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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