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성공 뒤엔… 든든한 '중동 우방국' 오만이 있었다

입력 2011.01.24 03:08 | 수정 2011.01.24 09:12

오만해군, 경비함 1척 보내 줄곧 최영함과 함께 행동
부상당한 UDT 대원 3명 헬기로 병원 후송하기도…

청해부대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성공 뒤에는 든든한 우군(友軍) 역할을 한 중동의 우방국 오만이 있었다. 오만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23일 "우리측이 오만 정부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가 오만 영해로 들어가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오만 정부가 흔쾌히 승낙하고 아주 신속하게 행동해줘 큰 힘이 됐다"며 "만약 오만 영해로 들어갔다면 청해부대 작전이 어떻게 됐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만 해군은 또 청해부대 최영함이 삼호주얼리호를 본격적으로 추격한 뒤 줄곧 경비함 한 척을 보내 함께 행동하도록 했고, 1차 구출작전 때는 부상당한 우리 UDT 대원 3명을 헬기로 병원에 후송하기도 했다. 합참 관계자는 "오만 경비함은 아덴만 여명작전 때 최영함 주변에 대기하면서 사람이 바다에 떨어지거나 해적들이 탈출하는 경우 등 돌발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오만과 심리적 거리가 매우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오만 언론도 청해부대의 인질구출 소식을 전하면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영자 일간지인 '무스카트 데일리'는 22일 1면 톱기사로 한국이 해적들로부터 선원들을 구출해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한국 특수부대 요원들이 아주 드물고 대담한 '급습'을 벌여 해적 8명을 사살하고 21명의 선원을 구출해냈다"고 보도했다. 무스카트 데일리는 23일자에도 1면에 부상당한 선장이 살랄라항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신드바드의 모험'의 배경이 된 나라인 오만은 우리와 1974년 외교관계를 맺었고 4년 뒤인 1978년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 한국 상주 공관이 문을 열었다. 이후 1980년대를 거치면서 오만의 각종 공사에 한국 기업들이 활발하게 참여했고, 특히 1995년에는 한국가스공사가 오만측과 2000년부터 25년 동안 매년 400만t의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 오만의 최대 LNG 수입국이다. 이 같은 오랜 유대관계 때문에 두 나라가 '유사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만은 name=focus_link>북한과도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만 정치·경제적 교류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만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무스카트에 상주 공관을 갖고 있는 나라는 40여 개국인데, 이 중 한국은 열대여섯 번째로 공관을 열었다"며 "이쪽 외교가에서는 한국이 꽤 고참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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