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음식 말라 붙은 냄비… 텅 빈 냉장고… 스산한 현장

입력 2011.01.15 03:04

[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9] 외로운 죽음 '고독死'…
日 유품정리 대행업체 일일사원 해보니…
소독 후 20일 지났지만 냄새 심해 바로 못들어가 조문 오는 지인 전혀 없어
日 독거노인 443만명 年 3만2000여명 고독사 유품정리업체 매출 급등

"저쪽으로 피하세요. 처음이라 견디기 힘들 겁니다."

앞서 가던 아오야마(靑山耕三·38)씨가 뒤따르는 기자를 제지했다. 지난달 20일 오전 9시 30분 도쿄 미나토구 A아파트. '하시모토 유키오'(가명)라는 문패가 걸린 1006호 현관 앞이다.

아오야마씨는 일본 최초의 유품(遺品) 정리 대행업체 '키퍼스(Keepers)' 도쿄 지점장이다. 고령화와 핵가족화로 연간 3만2000명이 고독사하는 일본의 진풍경이다. 2009년 현재 일본의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443만명에 달한다.

키퍼스의 '일일(一日)사원' 자격으로 따라간 기자가 저만치 뒷걸음질쳤다. 아오야마 지점장이 심호흡을 하고 코를 막더니 냅다 현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드르륵 베란다 여는 소리에 이어 지점장이 쿵쾅거리며 뛰어나와 숨을 몰아쉬었다.

다른 직원 6명이 청소도구를 들고 나타났다. 작업팀은 20분쯤 환기되길 기다려 집 안에 들어갔다. 60대 노인이 멀찍이 서성이며 작업을 지켜봤다. 정리를 의뢰한, 고인의 형님이었다.

본지 염강수 기자<왼쪽>가 유품 정리 대행업체‘키퍼스’의 일일사원 자격으로 도쿄 미나토구에서 고독사한 하시모토 유키오(가명)씨의 아파트를 청소하고 있다. /키퍼스 제공
◆사망 후 20일 이상 방치

사망 당시 하시모토씨는 58세였다. 프리랜서라지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유족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작년 11월 중순 아파트에서 숨진 뒤 20일 이상 방치됐다. 샐러리맨처럼 매일 직장에 출근하는 것도, 자영업자처럼 며칠 가게 문을 닫으면 남들이 궁금해하는 것도 아니었다. 날이 추워 창문을 전부 닫아둔 덕분에 시취(屍臭)로 온 동네에 부음을 전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그 대신 자동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사는 형님이 '혹시나' 하고 찾아왔다 질겁했다.

경찰은 외상(外傷)과 침입 흔적이 없는 점, 고인이 당뇨 합병증을 앓은 점, 부패 정도와 편의점 도시락 영수증 등을 토대로 '20여일 전 고독사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장의사가 시신을 수습한 뒤 키퍼스 직원이 집 안 가득 오존을 뿌렸다. 시취를 분해하기 위해서다. 작업팀이 아파트를 찾은 것은 오존 살포 후 20일이 지나 어느 정도 냄새가 빠졌을 때였다.

BMW 오토바이와 텅 빈 냉장고

그러나 집 안에 들어서자 냄새가 없어지긴커녕 한여름 하수구 같은 악취에 숨이 턱 막혔다. 지점장이 "시취가 아니라 오존 냄새"라고 다독거렸다. 오존 냄새와 시취가 어떻게 다른지 알 길이 없어 위로는 되지 않았다.

실내(132㎡·40평)는 얼핏 보면 말쑥했다. 거실에는 어른 가슴팍까지 오는 대형 스피커 2대가 있고, 옷장에는 가죽점퍼가 걸려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는 BMW 오토바이가 있다고 했다. 한때는 고인도 화려한 싱글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부엌부터는 '일상의 민얼굴'이 드러났다. 음식 찌꺼기가 말라붙은 냄비, 두텁게 녹슨 식칼, 기름에 찌든 개수대…. 당뇨를 앓았다면 음식 조절이 중요했을 텐데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작업팀이 쓰레기통에서 편의점 도시락 껍질을 찾아냈다.

아오야마 지점장은 "독신 남성이 고독사한 현장은 대개 이렇다"고 했다. 가족도 손님도 없다 보니 집 안에 먼지가 쌓여도 무심해진다. 그런 집 안을 보여주기 싫어 외부인의 방문을 점점 피하게 되고, 그럴수록 자기 관리에도 허술해진다. 거실에 놓인 헬스용 사이클은 페달에 비닐 포장지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아버지 영정 앞에서 숨지다

서재 한쪽 불단(佛壇)에 하시모토씨 부친의 영정이 걸려 있었다. 망자가 된 아버지가 아들의 마지막을 지켜봤으리라는 생각에 섬뜩했다.

공과금 영수증, 행사 안내장 등을 담아둔 박스 속에선 동남아 여행에서 찍은 듯한 오래된 사진 더미가 나왔다. 앨범에 정리하지 않고 사진관에서 받은 대로 쌓아둔 것이었다. 최근 사진은 없었다. 잡지도, 신문도, 책도 마찬가지였다. 불과 한달 전까지 사람이 살던 방이지만 방 안의 시간은 훨씬 전에 멈춰버린 듯했다.

키퍼스 직원이 사진과 함께 공과금 고지서를 추려 바깥에 있는 형님에게 전달했다. 고지서도 유품이라 할 수 있을까. 직원은 "그나마 이름이 인쇄돼 있으니까…" 했다.

낮 12시 점심시간. 아오야마 지점장에게 하시모토씨가 뭘 하던 사람인지 물었다. 그는 "의뢰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은 묻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조심스레 몇 가지를 전했다.

"견적서를 쓰려고 고인의 형님과 만났을 때 들어보니, 젊을 때는 동생도 꽤 수입이 좋았는데 최근에는 좀처럼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취직을 하겠다며 새로 명함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던데…. 잘 되지 않았나 봅니다."

조문객은 출입증 회수하러 온 거래처 직원

하시모토씨의 시신이 발견된 뒤 고인의 집을 찾은 사람은 경찰·장의사·키퍼스 직원뿐이다. 지인이 딱 한 사람 오긴 했다. 거래처 직원이 출입증을 회수해서 부리나케 돌아간 경우다.

오후 1시, 폐기물 운반차량이 도착했다. 운전기사가 화장실을 빌려 쓰러 올라왔다가 '헉' 하고 코를 막았다. 용변을 마친 그는 쪼그리고 앉아 쓰레기를 분류하는 기자에게 "고생하신다"고 인사했다. 이미 후각이 마비돼 뭐라고 대답하기 어려웠다. 오후 4시, 작업이 끝났다. 냉장고·세탁기 등 무거운 가전제품을 끌어내 전문처리 업체에 넘겼다. 기타 옷가지 등은 지자체 청소회사로 갔다.

매출 늘어나는 유품정리업체

도쿄 오타(大田)구의 '키퍼스' 사무실로 돌아오는 도로는 정체상태였다. 아오야마 지점장이 하품을 했다. 평범한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기자는 "동거인이 있었다면 병원에 며칠 입원하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까" 물었다. 지점장은 "글쎄요" 했다. 그도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대답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꿨다. 이렇게 혼자 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오야마 지점장은 "의뢰받은 작업 중 20%가 고독사인데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나머지는 고독사가 아닌데도 유족이 손수 유품 치우길 꺼려 돈 주고 해결하는 경우다. 지점장은 "예전처럼 가족과 이웃들 속에 살면 이런 일은 없겠지요" 했다.

사무실 화이트보드에 유인물이 붙어 있었다. 키퍼스 도쿄지점은 이미 12월 목표를 30% 초과 달성했으며, 이날자로 성과급이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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