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보육(保育)시설을 만들려면 총 300여개의 관련 법규를 확인하고 인가 절차를 밟는 데만 4~5개월 정도 걸린다고 한다. 어지간한 회사를 만들기보다 어렵고 까다롭다. 기업들이 직장 내 보육시설 설치를 꺼릴 만도 하다. 직장 보육시설 설치 의무사업장 중 보육시설을 만들어놓은 곳이 37.4%(2010년 6월)에 불과한 것도 이해가 간다.

중소기업의 현실은 훨씬 나쁘다. 80만 근로자들이 일하는 23개 국가산업단지 내 보육시설이 고작 16곳밖에 안 된다. 10만명이 근무하는 구로디지털산업단지 안에 보육시설이 단 2곳뿐이어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영·유아가 199명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국가산업단지 내 기업 가운데 보육 문제로 인력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기업이 44.1%에 달했다.

저출산과 노령화는 대한민국 미래의 목을 조여오는 가장 큰 위협이다. 정부가 "소득 상위 30%를 제외한 중산층까지 보육비를 지원하겠다"고 하고, 민주당도 "5세 이하의 어린이집·유치원 비용을 전액 지원하겠다"며 나서는 명분도 이런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아이를 키우는 근로자 부모의 고통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정부는 보육시설을 설치하는 기업에 2억원까지 시설비를 대주고, 융자도 해주고, 보육교사의 봉급도 지원해주고 있다. 이런 지원책도 일선기관의 시시콜콜한 행정규제에 막히면 그림 속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 도심의 한 백화점은 당초 본점 15층 직원식당 옆에 어린이집을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보육시설은 사옥 내 3층 이하에만 설치할 수 있다는 법규에 떠밀려 버스로 10분 거리인 재동 한옥마을로 옮겨야만 했다. 공무원들은 안전사고나 재난에 대비하자는 뜻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별도의 피난 시설과 피난로를 확보한 경우에는 고층에도 허용해주자는 발상은 왜 하지 못 했던 것일까.

정부는 입만 열면 보육시설을 늘리겠다고 해왔다. 그런데 보육시설 하나 설치하려면 4~5개월 동안 6개 부처를 뺑뺑이 돌리면서 300개 관련법규의 확인절차를 거치도록 만들어놓고 무슨 재주로 보육시설을 늘리겠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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