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침대엔 각자의 별세한 배우자 사진… 쿨한 황혼 동거

입력 2011.01.07 03:01 | 수정 2011.01.07 09:22

스웨덴 레나트·마리안느 커플… 양쪽 가족 22명이 함께 해외여행도

"또 커플끼리 짝이 됐네."

지난달 9일 오후, 스웨덴 스톡홀름시의 한 노인 아파트 1층 휴게실. 브릿지 게임을 하던 노인들이 카드를 펼쳐놓고 하나씩 집어서 짝을 정하다가 레나트 시베르트(Siwert·85)씨와 마리안느 발드네르(Waldner·72)씨가 한 팀이 되자 "텔레파시라도 통하냐"고 놀렸다.

두 사람은 2008년부터 '황혼 동거'를 시작했다. 원래는 이웃사촌이었다. 사별한 지 4년 된 마리안느씨가 사별한 지 한 달 된 레나트씨에게 "장 보러 가는데 자동차 시동이 안 걸린다"고 도움을 청해 연애가 시작됐고, 결국 살림을 합쳤다.

스웨덴의‘황혼 동거’레나트 커플.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스웨덴은 함께 사는 커플 세 쌍 중 한 쌍이 동거커플이라 '스톡홀름식 결혼'(혼인신고 하지 않은 사실혼)이라는 말까지 있다. 노인층도 혼인 신고 않고 함께 사는 사실혼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마리안느씨는 "수명이 길어져 앞으로 언제까지 살지 모르니까 마음에 맞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레나트씨 자녀들(1남2녀)과 마리안느씨 자녀들(2남)도 흔쾌히 축배를 들고 이사를 거들었다. 마리안느씨의 차남이자 스웨덴 탁구 국가대표를 지낸 얀오베(45)씨가 레나트씨에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상의할 사람이 없어 외로웠다"며 축복해주기도 했다.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레나트씨는 '88 서울올림픽'이라고 찍힌 트레이닝복을 꺼내 보여주며 "얀오베가 서울올림픽 기념품으로 간직하다가 내게 선물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동거 3년째인 요즘도 매일같이 꼭 붙어 다닌다. 월·수요일에는 볼링, 화요일엔 당구, 목요일엔 브릿지 게임, 금요일엔 테니스를 치는 식이다. 침대 머리맡 왼쪽에는 마리안느씨, 오른쪽에는 레나트씨의 가족 사진이 빽빽이 붙어 있다. 양쪽 합쳐서 자녀 5명에 손주 11명인데, 작년 여름에는 사위·며느리들까지 총 22명의 대(大)부대가 태국에 단체 여행을 다녀왔다.

별세한 각자의 배우자들도 액자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레나트씨는 "60년간 함께 살던 에바(첫 부인)를 마리안느가 대체한 게 아니라, 마리안느와 둘이서 에바를 추억한다"며 "에바 사진을 안 걸어두는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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