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결혼사진 찍고 자식들 불러 식 올리고… 70대에 다시 찾은 청춘

조선일보
  • 김경화 기자
    입력 2011.01.07 03:01 | 수정 2011.01.07 09:22

    [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5] '실버 신혼' 전영관·이원옥씨 부부
    외출때도 잘때도 손잡고 "매일 아침 눈 뜨면 하루가 다르게 보여", 주위에서 "회춘했다"
    처음엔 자식들 눈치 1년 이상 들여 설득
    성인 1000명 조사하니 44%가 실버 신혼 찬성
    실버 이혼도 많아 10년 전의 3~4배

    2006년 초겨울, 낙산사 가는 길에 처음 만났다. 등산 모임에서 단체로 여행가던 날, 여인이 관광버스에 오르니 딱 한 자리만 남아 있었다.

    그날 낙산사까지 나란히 앉아서 간 남녀가 반년 뒤 초봄에 다시 만났다. 중절모에 실크스카프를 하고 모임에 나온 남자에게 모든 여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남자는 누구에게도 눈길 돌리지 않고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여인의 곁만 지켰다. 2009년 결혼한 전영관(76)·이원옥(71)씨 부부 얘기다.

    "선생님(남편)이 키도 크고 인물이 좋으니까 다른 할머니들이 '바람둥이 같으니 멀리 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말씀을 나눠보니 이렇게 순수하신 양반이 없는 거예요."(부인 이씨)

    "무슨 소리, 저더러 '수지맞았다'고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화려한 인상이라 좀 어렵게 느껴졌는데, 아내가 복지관에서 열심히 봉사활동 하고 외손주들을 알뜰살뜰 키우는 걸 보고 '이 사람이라면 여생을 함께해도 괜찮겠구나' 싶었어요."(남편 전씨)

    전영관씨 부부가 2009년 촬영한 웨딩 사진은 부부의 침실에 걸려 있다. 70대의 나이에도 새하얀 웨딩드레스와 말쑥한 턱시도가 어색하지 않았다. /전영관씨 부부 제공
    경기도 의정부시 자택(106㎡·32평)에서 전씨 부부가 털어놓는 러브스토리는 20대 청춘처럼 아기자기했다. 서로를 오해한 적도 있고, 가족의 반대에 잠 못 이룬 적도 있었다. 침실 벽에는 두 사람이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물처럼 덤덤하게 늙어가는 전통적인 부부상과 달리, 부부는 외출할 때 손을 꼭 잡고 걷는다. 서로 어울리는 모자·머플러를 골라 색을 맞춰 입고 나간다. 새벽 6시에 남편이 이부자리에서 눈을 뜨면 부인이 깍지 낀 남편 손을 자기 뺨에 댄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노인 성생활 전문가인 한남대 임춘식 교수(사회복지학)는 "자식들은 '열 손주보다 악처가 낫다'는 말을 곰곰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씨는 2006년 초 1남3녀를 두고 다복하게 살아온 첫 부인을 앞세웠다. 빈방에 우두커니 앉아있으면 '나도 1년쯤 살다 따라가겠구나' 싶었다. 술 마시고 황폐하게 사는 전씨에게 50대에 사별하고 외롭게 지내던 이씨가 다가와 따뜻하게 보듬어줬다.

    전씨가 복지관에서 다른 노인들과 술 한잔할 때면 이씨가 지하철 한 칸 뒤에 타고 몰래 뒤따라가서 전씨가 무사히 집까지 들어가는 걸 보고 돌아갔다. 반대로 이씨가 봉사활동을 할 때는 전씨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씨를 기다렸다가 함께 등산도 가고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러 갔다. 두 사람은 1년 이상 시간을 들여 "눈 뜨면 곁에 있는 사람, 아프면 똑같은 마음으로 돌봐줄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고 자식들을 설득했다.

    부부는 주위에서 "회춘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편 전씨는 "매일 아침 눈뜨면 하루가 다르게 보이고 즐거운 마음이 든다"면서 "아내에게 충성하며 20년쯤 더 살고 싶다"고 했다. 부인 이씨는 "주책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한 이불 덮고 잘 때의 설렘과 행복감은 처녀 총각 때와 꼭 같다"며 "나는 친정 어머니(99세 별세)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르는데, 그 긴 세월 외롭게 늙긴 싫다"고 했다.

    전씨 부부는 '100세 쇼크'가 장차 한국인의 성(性)과 사랑을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킬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본지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3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운 응답자(44.2%)가 "실버 신혼에 찬성한다"고 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찬성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때 예외적인 현상이던 '실버 신혼'이 상당수 국민들이 "하는 게 좋다"고 선선히 받아들이는 선택이 된 것이다.

    그러나 '100세 쇼크'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젊은이처럼 달콤하게 사는 실버 신혼도 늘어났지만, 젊은이처럼 격렬하게 결별하는 황혼 이혼도 급증했다.

    2009년 65세 이상 노인의 재혼 건수는 남성 2065건, 여성 641건으로 10년 전에 비해 각각 1.8배, 2.7배씩 늘어났다. 이혼은 남녀 각각 4370건과 1739건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3.3배, 4.6배 늘었다. 건수로 따지건, 증가 속도로 따지건 실버 신혼보다 황혼 이혼이 더 많이, 더 빨리 늘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남윤숙(가명·60)씨는 수십년 불화 끝에 1남2녀를 출가시키자마자 집을 나왔다. 3년째 별거해온 남편(66)과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 남씨는 "22살에 결혼해 35년간 돈에 집착하는 포악한 성격을 참고 살았다"며 "남은 인생은 내 뜻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격분했지만 자녀들은 남씨 편을 들었다. 남씨는 요즘 친정 언니 집에 살며 텃밭도 가꾸고,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여행도 다니고 있다.

    서울 강북에 사는 김명숙(가명·68)씨는 실버 신혼에서 황혼 이혼으로 추락한 경우였다. 김씨는 2005년 복지관 실버미팅에서 윤영수(가명·68)씨와 만나 10개월간 이메일 연애편지를 받으며 열애했다. 태국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서 정다운 한때를 보냈지만 윤씨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 2년 만에 갈라섰다. 김씨는 "외로워서 만났는데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혜영 가족정책센터장은 "남성보다 여성이 '패권'을 쥐고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실버 신혼과 황혼 이혼의 공통점"이라고 했다. 수명 연장으로 남녀 모두 '남아있는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에서 과거에 비해 가정 내에서 발언권이 세진 여성들이 노년의 결혼과 이혼을 주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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