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준비 안 된 100세'는 나에게도 국가에도 재앙

조선일보
  • 특별취재팀
    입력 2011.01.03 03:01 | 수정 2011.01.03 08:58

    [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1] 2071년 100세 되는 장대석씨, 두 가지 시나리오

    2011년 1월 1일 아침, 새해 40세가 되는 장대석씨가 눈을 떴다. 197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그는 네 차례 이직 끝에 작년 9월 중견 홍보회사 임원이 됐다. 동갑내기 부인(교사)과 함께 알뜰살뜰 저축해 내집을 마련했고, 초등학생 남매도 무럭무럭 크고 있다. 그는 "틈틈이 공부해 장차 홍보 전문가 겸 저술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세심하게 짜인 장씨의 미래 설계에는 그러나 '수명'이라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그는 "대략 80대까지는 살 것 같은데 그 이후는 감이 잘 안 온다"고 했다. 실제로 장씨는 자신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10년 이상 더 살 가능성이 높다. 박유성 교수팀의 신(新)기대수명 계산에 따르면, 현재 살아있는 1971년생 남성은 절반(47.3%)이 94세를, 여성은 절반(48.9%)이 96세를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세 쇼크'는 축복일까, 재앙일까. 2071년 1월 1일, 100세 아침을 맞은 장씨의 하루를 본지와 삼성경제연구소가 시뮬레이션했다.


    재앙일 경우

    노인 7명 중 1명이 치매환자 재정파탄 국민연금 급여 삭감
    고령화로 경제성장률 떨어져 자녀들도 부양할 능력 없어


    눈을 뜨자마자 울적한 기분이 밀려왔다. 전날 밤 상가(喪家)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다. 대학 친구 A가 부인상을 당해 문상 갔더니, A는 없고 A의 아들만 문상객을 맞았다. 아들은 "아버지가 치매라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도 모르신다"며 고개를 떨궜다.

    장씨는 한숨을 삼켰다. 한국인 5명 중 2명(37%)이 65세 이상인 세상이다. 치매 환자는 2050년에 이미 200만명을 넘어섰다. (서울대 치매노인유병률 조사)

    치매뿐 아니었다. 정부가 아무리 '건강한 고령화'를 내세워도, 의료비 지출은 계속 늘어만 갔다. 장씨도 두 번이나 폐암·위암 치료를 받았다. 최악의 암 후유증은 '생활고'였다. 장씨의 부친(1933~2007)이 같은 병에 걸렸을 땐 6남매가 십시일반 치료비를 보탰지만, 장씨에겐 남매뿐이었다.

    더구나 두 아이 모두 장기실업에 시달리다 저축도 없이 초로(初老)에 접어든 신세였다. 고령화로 경제성장률이 2040년 0.74%까지 곤두박질 친 탓이다. 장씨는 결국 젊은 시절 애써 마련한 집을 팔고 지금 사는 노인용 고시원, 일명 '노인텔'로 이사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정근 수석연구원)

    한때 독일 기자가 쓴 '20대 80의 사회'라는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 지금은 그 책을 패러디한 '신(新) 20대 80의 사회'가 장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인류가 고소득·고학력·건강을 갖춘 상위 20%와 저소득·저학력·질병으로 고생하는 하위 80%로 양분됐다는 내용이다.

    장씨는 홍보회사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하려고 악전고투하다 포기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지만 그것도 70대까지였다. 80대 이후에는 무료한 나날을 보냈다.

    그래도 그는 월 100여만원씩 국민연금이 나와 극단적인 곤궁은 면할 수 있었다. 대학 후배 B는 임시직과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박봉으로 아이들을 키우다가 저축 없이 은퇴했다. B는 국민연금 혜택 없이 맨몸으로 노후의 삭풍에 맞서다 60대에 황혼이혼하고 70대에 노숙자로 전락해 연락이 두절됐다.

    문제는 국민연금마저 재정 파탄 지경이라는 점이다. 2040년까지만 해도 연금 적립액이 2400조원을 웃돌았지만, 수급자가 급증하면서 불과 20년 만에 '마이너스 214조2250억원'이 됐다.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

    부족한 돈을 국고 지원금으로 메우다 보니 나라 전체가 휘청거렸다.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그때마다 격렬한 논란이 벌어졌다. 장씨의 자녀들만 해도 "모아둔 돈도 없는데 세금만 날로 늘어난다"고 발끈했다.

    새해 만 40세가 되는 장대석씨가 경기도 성남 아파트를 나와 서울 논현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동갑내기 부인과 남매를 키우는 장씨는“열심히 준비해 장수가 축복이 되는 노후를 맞고 싶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이에 대해 노인들은 "노인 빈곤율(2007년 36%)이 계속 올라가는 판국에 연금까지 깎으면 '노인 정당'을 만들어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맞섰다. 올해도 새해 첫날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대규모 노인 시위가 잡혀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 '100세 쇼크' 브레인스토밍)

    장씨는 지하철역에 들어서면서 '지하철 요금이 무료가 아니라면 시위도 못 나가겠다'고 생각했다. 적자에 허덕이는 지하철역은 곳곳에 금이 가 지저분했다.

    서울역 앞은 노인들로 인산인해였다. 장씨의 휴대전화에 스팸 메시지가 들어왔다.

    '감미로운 회상에 젖어 세상과 작별하는 것은 모든 노인의 로망입니다. 고통 없이 보내드리는 약, 다이아그라(Die-agra).'

    장씨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젊은 시절, 다가오는 미래를 경고한 일본만화 '황혼유성군'에서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를 보고 "설마…" 하고 웃어넘긴 기억이 떠올랐다. 열심히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자 '저런 약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사 먹는 사람도 용납할 수 없다'는 분노가 솟구쳤다.

    그러나 장씨의 메시지를 흘끔거리는 옆 노인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옆 노인은 젊은 여자가 명품 백 광고를 보듯 하염없이 다이아그라 광고를 훔쳐봤다. 오래전에 연락 두절된 후배 B처럼, 그 노인도 늘그막에 홀로 거리에 내몰린 듯 초췌하고 지저분했다.


    축복일 경우

    국민연금·개인연금 수입에 주2일씩 일해 ‘3층 소득구조’
    저출산 해소돼 손자도 많아 행복도, 40세에 바닥 찍고 상승


    장씨는 결혼 73주년을 맞는 부인과 함께 인도양 유람선에서 새해 첫 일출을 봤다.

    관광하면서 건강검진도 받고 요가수업도 받는 '실버 크루즈'가 인기였다. 정부가 일찍부터 '건강한 고령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 덕에 요즘 100세는 해외여행도 거뜬히 다닐 만큼 정정했다. 장씨도 맞춤형 건강검진으로 폐암·위암을 조기에 발견했다. (산케이신문 '100세 시대' 특별취재팀)

    장씨는 유람선 갑판에서 인터넷으로 조선일보 신년호를 읽었다. 국내외 석학들에게 최근 200년간 인류가 매달린 '가장 바보 같은 고민'을 물은 기사가 흥미로웠다. "1위, 기차가 처음 나왔을 때 '인간은 시속 40㎞ 이상 달릴 수 있게 창조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19세기 영국 과학자. 2위, '100세 쇼크가 재앙일 수 있다'고 경고한 2011년 조선일보 특별취재팀."

    한때 "부유하고 건강한 소수와 가난하고 골골한 다수로 인류가 양분된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기우(杞憂)였다. 60대에 은퇴하는 대신, 평생 정년 없이 수시로 일과 공부를 오가는 시스템이 정착된 덕분이다. (스튜어트 올샨스키 일리노이대 교수)

    장씨도 90대까지 매주 이틀씩 홍보회사의 자문에 응하고, 나머지 시간은 역사소설과 경영서적을 썼다. 인세·자문료·국민연금·개인연금을 합쳐 월 400만원씩 들어왔다. 젊은 시절 전문가의 충고를 따른 덕분이었다.

    "자녀 교육에 '올인'하지 마라. 최고의 노후 준비는 평생 현역으로 살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일해서 버는 돈에 국민연금·개인연금을 합쳐 '3층 소득구조'를 만들어라." (강창희 미래에셋금융 퇴직연금연구소장)

    '더 내고 덜 받는' 대신 사각지대를 크게 줄이는 방향으로 국민연금 개혁도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국민연금운영개선위 '국민연금 운영개선방향' 보고서·2008년)

    장씨 부부는 인터넷 화상전화로 참새 같은 증손자 10명의 재롱을 마음껏 즐겼다. 보육 시스템 개선으로 저출산이 해소된 덕분에, 자녀가 아이들을 여러 명 낳으면서도 직장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70대에 접어든 아들은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 운전자의 혈압·심박수·안구(眼球) 움직임을 자동으로 체크하는 노인용 신차(新車)를 개발해 히트를 쳤다. 의사가 된 딸은 인공관절 수술 전문의 노인병원을 차려 해외 환자들을 한국에 끌어들였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유상·이동원 수석연구원, 매사추세츠공대 노화연구소)

    갑판에는 다정하게 팔짱 낀 노인 커플이 많았다. 장씨 부부처럼 오래 해로한 부부도 있지만 '황혼 재혼'한 커플도 많았다.

    장씨는 젊은 시절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에서 '행복은 U 커브를 그린다'는 기사를 읽고 반신반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미국·영국 연구팀이 72개국 50만명에게 주관적인 행복도를 물어본 결과, 세계 어디서나 20대 이후 행복도가 계속 떨어지다 40대에 바닥을 치고 노년이 될수록 올라가는 U자형을 그렸다는 내용이었다. (이코노미스트 2010년 12월 18일자, 미국 다트머스대·영국 워윅대 공동연구팀)

    크루즈선 식당으로 향하며 장씨가 부인에게 말했다. "U 커브가 맞네. 젊었을 땐 그때가 제일 좋은 줄 알았는데, 노년이 되니 더 행복해."

    2011년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은 83.2세. 하지만 불과 20년 뒤인 2030년 대한민국은 기대수명 급증으로 인해, 100세 쇼크가 강타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70~80세 기준으로 각자의 삶을 준비해 온 개인과 사회는 평균수명 100세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정경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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