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일 경우…노인 7명 중 1명이 치매환자

조선일보
  • 특별취재팀
    입력 2011.01.02 22:51 | 수정 2011.01.03 08:57

    [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1] 2071년 100세 되는 장대석씨, 두 가지 시나리오… 재앙일 경우
    '준비 안 된 100세'는 나에게도 국가에도 재앙
    재정파탄 국민연금 급여 삭감 고령화로 경제성장률 떨어져…자녀들도 부양할 능력 없어

    2011년 1월 1일 아침 7시, 경기도 성남시의 한 아파트. 요란하게 울린 알람시계에 장대석(40)씨가 기지개를 켰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197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양구에서 육군병장으로 복무했다. 충북대 졸업 후 서울에 올라와 광고회사에 들어갔고, 외환위기와 글로벌금융위기의 파도를 넘으며 네 차례 이직한 끝에 직장생활 14년 만인 작년 9월 직원 30명 규모의 홍보회사 임원이 됐다.

    그는 대학 동기동창인 부인(40·교사)과 98년 결혼해 5학년 아들, 3학년 딸을 뒀다. 부모님이 주신 종자돈(3000만원)에 두 사람 저금을 보태 지금 사는 집을 샀고, 매달 대출금 상환액을 포함해 250만~300만원을 저축하고 있다.

    일하면서 틈틈이 공부해 언젠가 홍보 전문가 겸 전문저술가가 되는 게 그의 꿈이다. 그는 역사적 인물들의 리더십에 관심이 많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작년 말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 지원해 합격했다.

    세심하게 짜여진 미래 설계도지만 결정적인 ‘구멍’이 있다. 바로 ‘수명’이다. 그는 “대략 80대까지는 살 것 같은데, 그 이후는 솔직히 감이 안 온다”고 했다.

    그러나 이처럼 계산 없는 ‘공백’으로 남겨두기엔 수명이 개인의 행복에서 갈수록 큰 변수가 되고 있다. 본지가 박유성 고려대 교수팀에 의뢰해 한국인의 기대수명 변화를 예측한 결과, 장씨를 포함한 1971년생 남성은 현재 살아있는 사람의 절반(47.3%)이 94세를, 같은 해 태어난 여성은 절반(48.9%)이 96세를 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세인(人)이 희귀하지 않은 이른바 ‘100세 쇼크’가 박두한 것이다.

    본지가 삼성경제연구소에 의뢰해 100세 쇼크가 축복이 된 세상과 재앙이 된 세상을 시뮬레이션했다. 앞으로 60년 뒤인 2071년 1월 1일, 알람 소리에 눈뜬 100세 노인 장씨의 하루다. [편집자주]

    장씨는 울적한 기분으로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전날 밤 상가(喪家)에서 있었던 일로 마음이 뒤숭숭했다. 대학 친구 A가 부인상을 당해 문상을 갔더니, 정작 A는 상청(喪廳)에 없고 60대 후반인 A의 외아들만 지친 얼굴로 문상객을 맞고 있었다. 장씨를 본 A의 아들이 눈길을 떨어뜨렸다.

    “아버지가 치매라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모르십니다.”

    장씨는 한숨을 삼켰다. ‘아, 또 한 사람이….’

    치매 환자는 벌써 20년 전에 200만명을 넘어섰다. 노인 7명 중 1명꼴이다. 85세 이상 후기고령인구가 차곡차곡 불어난 탓이 컸다. (서울대 치매노인유병율 조사)

    치매뿐 아니다. 한국인 5명 중 2명(37%)이 65세 이상 노인인 세상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빼고 일할 나이 젊은이만 헤아리면 ‘젊은이 100명당 노인 72명’이었다. 정부는 “‘건강한 고령화’로 재정 파탄을 막자”며 적극적으로 노인 건강을 챙겼지만 공공의료비 지출은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통계청 장기인구추계)

    새해 만 40세가 되는 장대석씨가 경기도 성남 아파트를 나와 서울 논현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동갑내기 부인과 남매를 키우는 장씨는“열심히 준비해 장수가 축복이 되는 노후를 맞고 싶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장씨 자신도 최근 들어 두 번이나 폐암·위암 치료를 받았다. 암이 남긴 최악의 후유증은 ‘생활고’였다. 장씨의 부친(1933~2007)이 암에 걸렸을 때는 6남매가 십시일반 치료비를 보탰지만, 장씨에겐 남매뿐이었다.

    더구나 두 아이 모두 장기실업에 시달리다 저축도 못 하고 초로(初老)에 접어든 처지. 병원비 보탤 능력이 없었다. 고령화로 경제성장률이 2040년 0.74%까지 떨어진 탓이다. 장씨는 결국 젊은 시절 애써 마련한 아파트를 팔고 지금 사는 노인용 고시원, 이른바 ‘노인텔’로 이사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정근 수석연구위원)

    장씨가 젊었을 때는 독일 기자가 쓴 ‘20대 80의 사회’라는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 지금은 그 책을 패러디한 ‘신(新) 20대 80의 사회’가 장기 베스트셀러였다. 고소득·고학력·건강의 3박자를 갖춘 상위 20%와 저소득·저학력·질병의 3중고에 시달리는 하위 80%로 인류가 양분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쓸쓸한 마음으로 조문을 하고 돌아서는 장씨를 누군가 불러세웠다. 대학 친구 B였다. 반갑게 인사했지만 B의 눈빛이 너무 우울해 장씨까지 축 처지는 기분이었다. B는 대기업에 다니다 50대 초반에 퇴직한 뒤 중소기업에 재취업해 2~3년 더 직장생활을 했다. 그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지만 그것도 70대까지였다. 80대 이후 일도 없고 몸도 아파 우두커니 무료한 나날을 보내는 B는 “하루가 너무 길어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장씨와 B는 월 100여만원씩 국민연금이 꼬박꼬박 나와 극단적인 궁핍은 모면했다. 연락두절된 대학 후배 C를 생각하면 장씨는 항상 마음이 아팠다. 임시직과 비정규직을 전전하던 C는 박봉으로 아이들 키우느라 별다른 저축 없이 은퇴했다. 고용이 불안하니 국민연금도 제때 못 냈고, 그 결과 맨몸으로 노후의 삭풍에 맞서야 했다. 결국 C는 60대에 황혼이혼하고 70대에 노숙자로 전락했다.

    문제는 이 고마운 국민연금조차 재정 파탄 지경이라는 점이다. 2040년까지만 해도 연금 적립액이 2400조원을 웃돌았지만, 본격적으로 수급자가 늘어나면서 불과 20년 만에 ‘마이너스 214조2250억원’으로 수직 하락한 상태였다.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
    모자라는 돈을 국고 지원금으로 메우자니 나라 살림 전체가 휘청거렸다. 견디다못한 정부가 여러 차례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으로 연금 개혁을 추진했지만, 말을 꺼낼 때마다 격렬한 논란에 휘말렸다. 장씨의 자녀들만 해도 “버는 돈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무슨 돈을 어떻게 더 내라는 얘기냐”고 발끈했다. 이에 대해 노인들은 “일도 없고 몸도 아픈데 연금까지 깎으면 ‘노인당’을 만들어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맞섰다. (삼성경제연구소 ‘100세쇼크’ 브레인스토밍)

    새해 아침 장씨가 일찍부터 옷을 챙겨입은 것도 노인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지하철 역에 들어서면서 장씨는 ‘지하철 요금이 무료가 아니라면 이 시위도 못 나올 노인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적자에 허덕이는 지하철 역은 곳곳에 금이 가고 지저분했다. 제때 선로 보수를 못해 자잘한 사고도 끊이지 않았다.

    서울역 앞은 장씨처럼 시위하러 나온 노인들로 인산인해였다. 구호를 외치던 장씨의 휴대전화에 스팸 메시지가 들어왔다.

    ‘즐거운 회상에 젖어 감미롭게 세상과 작별하는 것은 모든 노인의 로망입니다. 고통없이 보내드리는 약, 다이아그라(Die-agra).’

    장씨는 경악했다. 젊은 시절, 다가오는 미래를 경고한 일본만화 ‘황혼유성군’에서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를 보고 “설마 이런 세월이 오겠냐”고 웃어넘겼던 기억이 났다. 그는 노인텔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를 떠올렸다. 그녀와 함께 살아온 63년 세월을 생각하자 ‘저런 약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사 먹는 사람도 용납할 수 없다’는 분노가 솟구쳤다.

    그러나 장씨의 메시지를 흘끔거리는 옆사람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저런 몸으로 용케 여기까지 나왔다’ 싶은, 지저분하고 앙상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젊은 여자가 명품백 광고를 보듯 하염없이 다이아그라 광고를 훔쳐봤다. 오래전에 연락두절된 후배 C처럼, 그 노인도 늘그막에 홀로 거리에 내몰린 처지 같았다.
    2011년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은 83.2세. 하지만 불과 20년 뒤인 2030년 대한민국은 기대수명 급증으로 인해, 100세 쇼크가 강타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70~80세 기준으로 각자의 삶을 준비해 온 개인과 사회는 평균수명 100세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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