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쇼크 축복인가 재앙인가] "150세까지도 살 수 있을까"… 과학계 '뜨거운 논쟁'

조선일보
  • 샌앤토니오·시카고=특별취재팀
    입력 2011.01.02 22:50 | 수정 2011.01.03 08:57

    오스태드·올샨스키 인간 수명 걸고 '세기의 내기'

    오스태드 텍사스대학 교수
    “20~30년 안에 인간 수명을 30% 늘리는 약이 나온다.
    장수는 축복이다. 단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을 뿐이다. 알츠하이머병처럼.”

    올샨스키 일리노이대학 교수
    “인간은 노화를 막을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다.
    기대수명은 85세에서 정점을 찍을 것이다.”

    “현재 나이는 10~15살. 일본 소녀일 가능성이 크다. 대대로 오래 사는 집안에서 밝게 자란 아이다. 어른이 되면 키 150cm 안팎의 아담한 체구에 학력은 대졸 이상, 재산도 웬만큼 있고 사회적 지위도 높다. 튼튼한 체질이라 상당한 고령까지 병원 신세 지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스티븐 오스태드(Austad·64) 텍사스대학 교수가 기자에게 ‘서기 2150년 인류 최초로 150세에 도달할 인간’의 조건을 예측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앞으로 20~30년 안에 인간 수명을 30% 정도 추가로 연장시키는 약이 개발돼 지금 살아있는 사람 중 한 명이 ‘150세 기록’을 세울 것”이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미국 샌앤토니오시(市) 외곽 텍사스대 노화연구재단. 훈풍이 남아 초록이 푸릇푸릇한 평원에 참나무와 노간주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여기서 오스태드 교수는 생쥐와 원숭이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실험을 지휘하면서, 심해(深海) 조개가 400~500년씩 장수하는 비결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진화론과 노화 연구를 접목시킨 석학이다.

    ◆‘6000억원의 내기’

    그는 과학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내기의 주인공이다. 내기는 논문에서 시작됐다. 오스태드는 2000년 한 학술지에 “2150년까지 인간의 최고수명이 150세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자 인구 문제 전문가인 일리노이 대학 스튜어트 올샨스키(Olshasnky·56) 교수가 전화를 걸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은 과학 사상 최대 판돈을 건 내기를 걸었다. 각자 150달러씩 내서 150년간 주식시장에 묻어두기로 한 것이다. 지난 20세기처럼 주가가 상승할 경우 150년 후 이 돈은 5억달러(6000억원)로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2150년에 150세 인간이 출현하면 오스태드의 후손이, 그렇지 않으면 올샨스키의 후손이 그 돈을 차지하기로 했다. 후손이 없을 경우 각자 몸담았던 연구소가 횡재한다. 변호사를 불러 계약서도 썼다.

    오스태드는 “지난 10년간 동물 실험에서는 이미 인간으로 치면 150세에 해당되는 생쥐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며 “미안하지만 내가 이길 게 확실하다”고 흐뭇해했다.

    ◆‘120세의 장벽’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장수한 사람은 122년164일을 살고 간 프랑스의 잔 칼망(Calment·1875~1997) 할머니였다. 칼망 할머니는 대대로 장수하는 부유한 상인 가문에 태어나 85세에 펜싱을 배우고 100세까지 자전거를 타다가 110세에 요양원에 들어갔다. 21세부터 117세까지 하루 두 대씩 꾸준히 담배를 피운 애연가이기도 했다.

    오스태드와 올샨스키가 승패를 가르는 선으로 ‘150세’를 택한 이유는 인간이 절주절식(節酒節食)하고 열심히 운동해서 도달할 수 있는 수명은 120세 안팎이 한계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120세의 장벽’이다. 바꿔 말해 노화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지 않고선 도저히 150세에 도달할 수 없다.

    ◆항노화 약품의 출현?

    오스태드가 20~30년 안에 개발된다고 자신한 약이 바로 노화의 흐름을 뒤틀어 ‘120세의 벽’을 깨는 약이다. 노화 관련 유전자 기능을 바꾸는 물질 3~4가지를 혼합한 약으로, 그는 ‘소염 기능 향상’이 핵심 기능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인간은 아프거나 다쳤을 때 염증이 생기는데, 나이 들수록 염증이 자주, 쉽게 생긴다. 생쥐 실험에서도 소염 기능 향상이 수명 연장의 핵심인 경우가 많았다.

    오스태드는 “최초의 150세 인간은 중년에 접어들 무렵 막 시판되기 시작한 여러 항(抗)노화 약품 가운데 하나를 복용하기 시작할 텐데, 실제로 그 약이 효험이 있다는 사실은 100~120세 무렵이 돼서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19세기 말 개발된 아스피린의 효능이 지금도 계속 추가로 밝혀지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수많은 약 중에서 하필 그 약을 택해 적절한 시점에 복용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지식과 혜안(慧眼)이 필요하다. 오스태드는 “그래서 고학력·고소득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150세 인간의 출현은 인류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모두가 그녀만큼 장수하진 못하겠지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약을 먹고 점차 수명이 연장될 것이라고 오스태드는 말했다. 그녀가 우리 모두의 견인차가 된다는 뜻이다.

    ◆노화는 막을 수 없다?

    훈풍이 남은 텍사스 평원과 달리, 오스태드의 적수 올샨스키가 살고 있는 시카고는 삭풍이 몰아치고 흰 눈이 두텁게 쌓여 있었다. 올샨스키는 “오스태드가 말한 약은 절대로 나올 수 없고, 신(神)이 개입하지 않는 한 이 내기는 내가 이긴다”고 했다.

    의학이 빠르게 발달한다지만, 노화의 흐름을 돌리거나 늦추는 것은 SF 영화의 소재지 과학의 영역은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그 비슷한 약물이 나온다 해도 수명을 2~3년 연장하는 데 그칠 거라고 올샨스키는 말했다.

    “가령 영화배우 데미 무어(Moore·49)처럼 의학과 미용의 도움으로 시간을 냉동시키는 데 성공한 듯한 인물도 남보다 천천히 늙는 것뿐이지 무어 자신이 어제보다 오늘 더 젊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완벽한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전신 성형수술을 해도 무어는 시시각각 늙어갑니다. 그 흐름을 돌리는 약은 최소한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안 나옵니다.”

    ◆벌어지는 건강격차

    그러나 두 학자가 확실하게 동의하는 지점이 있었다. 세계 어디서나 ‘건강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질 거라는 대목이다.

    오스태드는 “‘평균’이라는 낱말에 속지 말라”고 했다. 앞으로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늘어난다 해서 모든 한국인이 균등하게 장수하는 건 아니다.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그룹은 질병에 시달리다 70~80대에 죽고, 부유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그룹은 100세 전후까지 팔팔하게 살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고 그는 말했다. 젊은 날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노년의 건강 격차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올샨스키도 “바로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 데 정부와 학계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학자들은 노인들이 정정하게 살다가 특정 연령대에 집중적으로 짧게 앓고 대거 사망할 거라는 ‘와병(臥病) 기간 압축’ 가설과, 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자리보전 기간도 따라서 늘어난다는 ‘와병 기간 확장’ 가설을 놓고 논쟁해왔다.

    올샨스키는 “실제로는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고소득·고학력자는 와병 기간이 압축되고, 저소득·저학력자는 와병 기간이 확장된다는 얘기다.

    ◆사각형 인구구조

    건강 격차만큼이나 공포스러운 측면이 또 있다.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다. 인류는 어린이가 많고 노인이 적은 ‘피라미드’형 인구 구조에서 어린이는 줄어드는데 노인은 줄지 않는 ‘사각형’ 인구 구조로 이행했다. 지구의 역사를 통틀어 그 어떤 생물 종(種)에서도 이런 인구 구조는 없었다. 올샨스키는 “한국 정부가 그 어떤 출산 장려정책을 써도 이 흐름은 못 막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변화는 엄청난 충격을 수반한다.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대공황 직후(1935년) ‘최대 수급자 2500만명’을 전제로 설계됐지만, 2000년에 벌써 수급자가 3800만명을 넘어섰다. 올샨스키는 “이 정도는 아직 약과”라고 했다. 올해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본격화되면 장차 7000만명까지 수급자가 불어난다. 재정 파탄, 노인 빈곤, 세대 갈등…. 한국도 같은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장수는 축복”

    그러나 지레 겁먹을 이유는 없다. 두 석학은 “장수를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노인을 ‘사회적 자산’으로 대접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데 공통적이었다.

    오스태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삶은 향상되고, 고통은 줄어든다”고 했다. 20세기 초 유럽 생의학자들은 “노인이 급증한다”고 걱정했지만, 당시 유럽의 평균수명은 50세에도 못 미쳤다. 오스태드는 “제아무리 고령화의 파도가 높아도, 위생도 의학도 형편없던 20세기 초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올샨스키는 “지금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우행(愚行)은 노인들을 박대하고 일터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사회적 약자, 특히 학령기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다양한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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