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갤럽이 최근 전국 남녀 3401명을 상대로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물었더니 소녀시대가 1위를 차지했다. 소녀시대는 작년에도 같은 조사에서 1위였다. 2007년과 2008년에는 원더걸스가 2년 연속 1위였다. 이른바 '걸그룹'이 대한민국 가수의 대명사가 된 지 오랜 셈이다.

갤럽의 이번 조사에서 10위권 내의 7명(팀)이 아이돌이었다. 나머지 세 명은 장윤정·태진아·송대관이었다. 10팀 안에 밴드는 단 한 팀도 없다. 작곡을 하는 태진아를 제외하면 싱어송라이터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다. 다들 음반이나 라이브 공연보다 TV 예능프로그램에 주력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지난주 조선일보가 음악 전문가 28명에게 물은 결과 '올해의 앨범'은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었고, '올해의 아티스트'는 나윤선과 수퍼세션(엄인호·최이철·주찬권)이 꼽혔다. 두 결과를 놓고 보면 일반인과 음악 전문가 사이 간극(間隙)은 지구와 명왕성만큼 멀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지난 20년간 한국의 GDP는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에 따라 생활 지표들도 매우 화려해졌다. 고가의 수입차를 길에서 흔히 볼 수 있고,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거나 호텔에서 결혼하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고 어른들은 17년짜리 위스키를 즐겨 마신다. 그런데 음악 소비행태만큼은 크게 퇴보했다. 사람들은 20년 전처럼 음반을 사지 않는다. 공연장에도 가지 않고 오로지 TV로만 음악을 소비한다. TV에 나와 노래는 않고 잡담만 해도 가수라고 생각한다. TV만 보면서 "요즘 들을 음악이 없다"고 엉뚱한 푸념도 한다.

TV는 음악을 홀대할 수밖에 없는 매체다. 불특정 다수인 시청자의 취향에서 공통분모를 찾다 보니 예쁘고 잘생겼거나 웃기고 희한한 사람을 우대한다. '음악 잘하는 사람'에겐 별로 관심 없다. 타악 연주자 류복성이 봉고 연주를 처음 선보인 프로그램이 '묘기대행진'이었으니 TV가 음악에 무관심한 건 최근의 현상이 아니다.

한국 대중음악은 TV에 목숨 거는 아이돌과 TV를 신경 안 쓰는 인디, 두 가지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돌도 아니고 인디도 아닌 뮤지션들은 모두 라디오 DJ나 대학 강사가 됐고, 세션이나 레슨을 할 뿐 창작을 하지 않는다. '음악 잘하는 사람'을 환대해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소녀시대 1위'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돌 싹쓸이'는 트렌드가 아니다. 우리 대중문화가 병들고 있다는 뜻이다. 더 위중해지기 전에 처방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