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데 네가 일본인과 결혼한다는 말이냐?"

안중근 의사(義士)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役)을 맡은 여학생이 일본인과 결혼하겠다는 손자 안중생 역의 남학생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옆에서 아들과 시어머니를 번갈아 지켜보던 안 의사의 처 김아려 역을 맡은 여학생이 "가문보다 중생이의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죠"라며 아들 편을 들면서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며느리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객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서울 동숭아트센터에서 서울대 경영대생들이‘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 100여명의 대학생이 10여명씩 10개팀으로 나뉘어 안중근 의사의 아들 안중생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이토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했다. 10편 모두 원작에 나오는 안중근 의사의 주변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지만, 시나리오는 모두 다르게 만들었다. 조 단위로 공연이 이어질 때마다 다른 학생들은 관객이 됐다.

이들 학생은 연극 전공이 아니다. 서울대 경영대에 개설된 수업 '디자인과 경영전략'의 수강생이다. 지도교수인 경영학과 조동성(61) 교수는 디자인이 기업의 경영전략에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의하며 학생들에게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문했다. 조 교수는 "학생들이 '창조'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유도하기 위해 원작을 각자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연극을 준비하게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조마리아 역을 맡은 여보라(22·경영4)씨는 "강의계획서에도 없던 연극을 우리가 왜 해야 하는지 회의적이었다"고 했다. 여씨는 그러나 "연극 연습을 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원작을 다시 보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연출을 맡은 우지훈(24·경영4)씨는 "친구들과의 연극 연습 과정 자체도 좋은 추억거리가 됐다"며 "모두들 연기는 서툴지만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조 교수는 "학생들 반응이 예상보다 좋다"며 "창조적 시각을 끌어내기 위한 새로운 수업 방식을 계속 발굴해 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