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그사건 그사람 그후] A양, 10번 수술 끝에 '악몽의 흔적(배변 주머니)' 뗐다

    입력 : 2010.12.17 03:03 | 수정 : 2010.12.17 10:43

    [2010 그사건 그사람 그후] [5] 초등생 납치 성폭행 '김수철 사건'

    피해자 A양과 가족은…
    6개월째 병원서 고통의 시간 온 가족이 병실바닥 새우잠 "새 집·새 학교서 다 잊길…"

    범행 저지른 김수철은…
    무기징역 확정… 光州수감 면회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이름 오르내리는 것 싫다"

    "으으으…. 배 아파…. 너무 아파…."

    15일 오전 11시 30분쯤 서울의 한 병원에서 만난 A(8)양은 병상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두 시간 동안 수술을 받은 뒤였다. 수술을 한 오른쪽 옆구리 통증을 견디기 힘들 때마다 침대 매트리스를 손으로 내리쳤다. 진통제를 투여하자 왼쪽으로 돌아누워 구역질을 했다. A양 아버지는 딸 입에서 나오는 내용물을 말없이 받아냈다. 어머니 박모(38)씨가 딸의 등을 연방 쓰다듬었다. "이젠 끝이야, 정말 끝! 고생 많았다. 우리 착한 딸…."

    김수철에게 성폭행당한 뒤 6개월 동안 오른쪽 옆구리에 배변 주머니를 달고 다니던 A양의 배변 주머니 제거수술이 지난 15일 성공적으로 끝났다. 수술 직후 통증에 신음하는 A양을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루만지며 달래고 있다. /이석호 기자 yoytu@chosun.com
    A양은 지난 6월 다니던 초등학교 교정에서 납치돼 성폭행당한 '김수철 사건'의 피해 어린이다. A양은 사고 후 6개월 동안 수백 번 갈아 끼운 배변 주머니를 이날 완전히 제거했다. 10번째 수술이자 마지막 전신마취 수술이었다. 여덟 살짜리 A양은 자기 나이보다 많은 횟수의 수술을 견뎌냈다. "수술받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잊었던 그× 이름이 떠올라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왜 우리 애가 그런 × 때문에 학교도 못 가고 저 고생을 해야 하는지…. 딸이 당하는 고통을 그대로 그놈이 겪게 만들고 싶습니다." A양 아버지는 치를 떨었다.

    김은 6월 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컴퓨터 수업을 기다리던 A양을 자기가 사는 신길동 단칸방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단란했던 A양 가족의 삶은 이 사건으로 뿌리째 흔들렸다. A양 부모와 동생(7)은 20㎡ 넓이의 병실 바닥에 두께 1~2㎝ 스티로폼을 깔고 새우잠을 잔다. 초등학교 1학년인 동생도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있다. A양 가족은 지난 8월 서울의 한 월세 아파트로 이사했지만 몇 번 가보지도 못했다. 가족들은 모두 환자용 식사를 먹고 있다. A양 아버지는 지난 8월 직장을 그만뒀다. 범죄 피해자 지원금으로 그럭저럭 생활해 왔지만 A양이 퇴원하면 새 직장을 구해야 한다.

    배변 주머니는 지긋지긋한 병실 생활을 더 힘들게 했다. 배설물에서 나온 가스 때문에 주머니가 부풀면 편하게 잠을 잘 수 없었다. 자다가 배변 주머니에 붙은 테이프가 떨어져 이불과 몸이 더러워진 적도 여러 번이다. "○○야, 주머니 엄청 떼고 싶어 했잖아. 이제 없어졌네! 이제 인라인스케이트랑 피겨스케이트 사서 타러 가자." 어머니 박씨가 신음하는 딸을 달래며 물 적신 거즈를 입에 물렸다.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 3~4일은 물도 못 마신다.

    어머니 박씨는 "딸이 그날 기억을 못 잊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며 울먹였다. "한 번은 '그때 컴퓨터 하러 갔을 때 필통 어쨌어'라고 물었는데, 딸이 '(김수철이) 버리라고 해서 버렸어'라고 말하더군요. 다행히 아이는 아직 그 사람 이름을 모릅니다."

    A양 가족은 이달 안에 퇴원해 새 보금자리에서 새해를 맞이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A양 아버지는 "딸이 악몽 같은 2010년을 잊고 새 학교에서 새 친구들과 즐겁게 생활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개명(改名)도 생각 중이다.

    "엄마, 물고기한테 밥 좀 줘…." 신음하던 A양이 갑자기 엄마를 불렀다. 머리맡 탁자 위 어항에 물고기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성범죄 피해 아동을 지원하는 원스톱지원센터가 준 선물이다. A양은 매일 아침 물고기 밥을 챙겨주며 아픔을 잊고 있다. 이날은 수술 때문에 밥을 주지 못했다. 어머니 박씨는 "유치원 때부터 수영을 배웠는데, 퇴원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수영이래요"라고 말했다. 물고기처럼 신나게 헤엄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A양 소망이 병실에 있는 스케치북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저는 하와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수영복도 새로운 걸로 봤구고(바꾸고) 하와이 전통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

    A양이 병실에서 고통받는 사이 김수철은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최근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 지난 13일 면회를 요청했지만 김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은 대신 교도관을 통해 '면회를 원하지 않는다. 오해 없길 바란다'고 쓰고 지장(指章)을 찍은 메모를 전했다.

    교도관은 "김이 '이곳에 적응해 잘 살아보려 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더 이상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교도소 관계자는 "김은 조용한 편이고 다른 수형자들과 잘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말썽을 일으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어릴 때 부모를 잃은 김의 친형(50)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생을 잊었고 포기한 지 오래됐다"고 싸늘하게 말했다. 형 김씨는 "내가 죄인 된 심정이다. 겨우 먹고사는 처지라 도움을 줄 수 없어 죄송하다고 피해자 가족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

    김수철 사건 이후 성범죄자를 좀더 강력하게 처벌하고 예방 조치도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성범죄자 약물치료, 일명 '화학적 거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6월 말 국회에서 '화학적 거세'를 담은 법률안이 통과됐고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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