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 4674명 조사] 가계지출 35%는 자녀에… 10%는 부모에… 노후 준비는 거의 제로

    입력 : 2010.12.10 02:59 | 수정 : 2010.12.10 10:42

    [1] 3重苦에 시달리는 샌드위치 세대
    부채 뺀 평균 자산 2억9633만원… 이제 노후준비 좀 해볼까 하는 때에 "직장 그만둬라"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 격인 1955년생 김진훈씨는 요즘 '잘못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는 대형 은행 지점장 출신으로 사회에서 잘나가는 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2008년 명예퇴직하고 계약직으로 2년 더 일하다 은행원 생활을 마무리한 올해 3월, 그는 다시 자녀 교육과 노후 준비를 위해 재취업 전선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은 은행 지점장 출신이니 모아놓은 돈이 좀 있을 줄 알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퇴직금 등 박박 긁어 서울 논현동에 시가 8억원짜리 집 한 칸 마련한 것 외에는 자산도 없다. 그는 "은행에 있을 때는 애들 교육비 대느라 정신없었고, 이제 노후 준비 좀 해볼까 하는 때에 쫓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김진훈씨가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맏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는 자식 교육과 부모 봉양에 치중하다 보니 정작 자신들의 노후 준비는 뒷전이었다. 김씨는 “앞날을 생각하니 겁이 나 25년 은행원 생활을 마무리하면서도 ‘휴식기간’을 가질 생각을 못했다”고 말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재테크는 엄두도 못 냈고…. 그저 맡은 일에만 충실하고 살았어요. 그래도 애들이 속 한번 안 썩이고 잘 커준 것이 고맙지요."

    대학원까지 나온 장남(25) 뒷바라지에 계속 돈이 들었고 중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차남(23)에게도 등록금·생활비 등을 보내줘야 했다. 2년 전 작고한 아버지에게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월 30만원씩 용돈을 부쳐 드렸다. 말년에 병원 신세를 질 때는 형제 중 가장 사정이 낫다는 이유로 병원비도 가장 많이 부담했다.

    김씨는 퇴직 후 6개월 동안 100여곳에 지원한 끝에 미소금융 컨설턴트(지점장)로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월급은 200만원으로 은행원으로 일할 때의 몇 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함께 은퇴한 동료 3명은 여전히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있으니 그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지만 4인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부족한 편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3중고

    김씨는 자식 키우고 부모 모시는 데 매달리느라 정작 자신의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 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녀교육·부모부양에다 노후준비 소홀의 3중고(重苦)에 시달리는 셈이다.

    본지와 서울대 베이비부머 패널조사팀이 4674명의 베이비붐 세대를 조사한 결과, 50세 전후인 베이비붐 세대는 전체 세대 중에서 자산이 가장 많을 때지만 노후를 위해 모아놓은 돈은 많지 않았다. 평균 자산은 부동산 자산이 2억7500만원, 금융자산이 4499만원 등이었지만 부채가 3407만원이어서 순자산은 평균 2억9633만원이었다. 부동산 자산이 83.2%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금융자산도 부채를 빼면 1092만원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은퇴 후 월평균 생활비로 211만4000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강창희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장은 "60세에 은퇴해 80세까지만 산다고 해도 월 211만원 생활비를 쓰려면 적어도 4억원 이상이 필요한데 노후 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처럼 은퇴자금 준비를 못한 것은 자녀 교육과 결혼 비용, 당장의 생활비 때문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들의 지난해 월평균 생활비는 283만6000원이었는데, 이 중 자녀 양육비로 60만4000원을 쓰고 있다고 답했다. 여기에다 연간 자녀 대학 등록비로 358만원, 자녀 유학비용으로 46만원, 결혼비용으로 80만원을 쓰고 있다고 답해 자녀에게 매달 생활비의 35% 정도인 100만원을 쓰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퇴직 이후를 대비한 자산 축적을 못해 응답자의 29.7%는 은퇴 이후를 위한 저축·투자에 '상당히 미흡한 편'이라고, 15.2%는 '아직 시작하지 못했다'고, 15.0%는 '계획에 다소 차질을 빚고 있다'고 답하는 등 60%가 은퇴 자산 준비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베이비부머 패널연구팀 차승은 연구교수는 "현재 베이비붐 세대는 생애 주기상 자녀 교육 등으로 가장 돈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저축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말했다.

    "부모 부양하는 낀 세대"

    여기에다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 부양'이라는 부담이 하나 더 있었다. 응답자의 66.3%는 정기적·비정기적으로 부모님께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부모에게 월평균 13만9000원, 배우자의 부모에게 13만7000원을 지원해 한 달에 27만6000원 정도를 부모 봉양에 쓴다. 월 생활비 283만6000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서기훈(가명·50)씨는 충북에 사는 부모님과 경기도에 사는 장인·장모에게 매달 각각 20만원을 보내고 있다. 이렇다 할 연금이 없는 부모는 농사를 지어 얻는 수익과 자녀들이 부쳐주는 돈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2명의 자녀를 둔 서씨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부모님께 물려받을 재산은 없지만,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 생계를 돕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노후에 자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것을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어렵게 재취업에 성공한 김진훈씨의 요즘 가장 큰 고민은 여전히 자녀 문제다. 둘째 대학 학비 부담이 여전히 남아 있고 두 아들 결혼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전셋집이라도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지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김씨는 "우리 세대는 부모와 자녀 양쪽에 베풀고 돌려받는 것은 없는 마지막 '샌드위치 세대'인 것 같다"며 "앞으로 10년 정도는 부지런히 일한 다음 그때 가서 다시 뭘 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퇴와 함께 비로소 시작되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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