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히스토리아] [87] 허위 정보

  •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입력 : 2010.12.03 23:30

    제2차 세계대전 말인 1944년 12월, 독일 방향으로 진격해 들어가는 연합군에 대해 나치군은 대반격을 가했다. 이때 특별한 역할을 한 것이 독일군 무장 친위대 지휘관 오토 스코르체니 중령의 특수부대이다. 이들은 후방에 침투해 들어가 허위정보를 퍼뜨려서 연합군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그리핀 작전(Unternehmen Greif)'을 수행했다.

    이들은 미군 군복을 입고 미군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데다가 영어에 능통하고 심지어 미군이 껌을 씹을 때의 모습까지 완벽하게 연습한 상태였다. 노획한 미군 지프를 타고 후방에 잠입한 특수부대는 도로 표지판을 바꾸어 놓거나 가짜 지뢰 표시를 설치하여 연합군 전차부대의 전진을 방해했고, 독일군이 진격해 온다는 가짜 정보를 퍼뜨려 미군이 점령한 기지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했다.

    미군에게 사로잡힌 특수부대원들은 스코르체니 자신이 특공대를 이끌고 베르사유에 설치한 연합군 최고사령부를 급습하여 아이젠하워 장군을 살해하려 한다는 황당한 거짓 자백을 했다. 미군은 이런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고 파리 시내에 야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아이젠하워 장군은 세 겹의 호위와 철조망에 갇혀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했다. 심지어 아이젠하워와 비슷하게 생긴 볼드윈 스미스 중령이 미끼가 되어 매일 장군의 전용차로 베르사유로 출퇴근하며 장군의 유명한 미소 짓는 모습을 흉내 내기도 했다.

    미군 행세를 하는 특수부대원들이 침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미군 사이에 큰 혼란이 벌어졌다. 헌병들은 걸핏하면 지나가는 군인을 붙잡아 "미키마우스의 여자친구는 누구지?" 같은, 미국 시민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의 질문을 던졌다. 그렇지만 진짜 미군 중에도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한 준장은 시카고 컵스가 아메리칸 리그에 속한다고 잘못 말했다가 5시간 동안 잡혀 있어야 했다. 최고사령관 브래들리는 일리노이주의 주도(州都)가 스프링필드라고 맞게 대답했지만 헌병이 시카고라고 우기는 통에 곤욕을 치렀고, 다음번에는 유명한 영화배우 베티 그래블의 마지막 남편이 누구인지 몰라서 쩔쩔맸다.

    루머와 허위 정보는 때로 실제 전투만큼이나 위험할 수 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