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보기 싫던 남편과 이젠 사랑을 얘기해요"

    입력 : 2010.11.22 03:01

    노부부 14쌍의 '다시 올린 결혼식'
    부부관계 개선 프로그램… 위기의 노년, 갈등 풀어 "신혼처럼 새출발 해야죠"

    "남편이 새신랑처럼 180도 바뀌었어요."

    안영순(67)씨는 수줍은 신부처럼 호호 웃으며 남편 김호남(70)씨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지난 10일 다른 노부부 13쌍과 함께 충북 충주의 '깊은 산 속 옹달샘 명상센터'로 1박2일 신혼여행을 다녀온 둘은 사이 좋은 젊은 부부처럼 행복해 보였다.

    수십년 전에 결혼한 중·노년 부부 14쌍이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황혼결혼식 ‘리마인드 웨딩’을 갖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들은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의 '부부관계 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부부들이다. 복지관은 2008년부터 갈등이 심해 위기에 놓인 노부부들을 대상으로 매주 수·금요일 모여 고민을 털어놓고 앙금을 씻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복지관 관계자는 "넉 달 전 시작할 당시엔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던 부부들이지만 24회 프로그램이 끝나니 마치 신혼 때 모습을 되찾은 것 같다"고 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불광동 팜스퀘어 컨벤셜웨딩홀에서 14쌍의 노부부는 감격의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두 번째로 입장한 안영순씨는 드레스를 살포시 잡아주면서 나란히 걸어가는 남편 김씨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안씨는 "1971년 결혼했지만 내내 사이가 안 좋았다"며 "늘 말도 없이 자기 방에 틀어박혀 사는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다"고 했다.

    그는 "두 아들 때문에 꾹 참고 살다가 애들이 대학가고 나면 이혼하려고 했었다"고 털어놨다. 8년 전 이혼서류를 만들어 남편에게 주고 미국에 가 있었던 안씨는 "아들·며느리 걱정도 되고, 그놈의 정 때문에 다시 돌아왔지만, 그저 남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며 "혹시 하는 마음에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런 데를 뭐하러 가자는 거냐"며 불평하던 남편은 "다른 부부들은 저렇게 대화를 많이 하고 사는 줄 몰랐다"며 서서히 달라졌다고 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수업을 듣던 그가 어느 순간 옆에 와 껴안기도 하고, 어색해하면서도 "자식들 키워줘서 고맙고 수고했어요" "사랑해"라는 말도 하기 시작했다. 안씨는 "남은 세월 같이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답답했는데, 이렇게 행복한 날도 오네요"라며 눈물을 닦았다. 부모의 이혼 위기를 지켜봤던 아들 김명훈(35)씨는 "이제 새롭게 결혼하셨으니, 그동안의 아픔은 잊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며 새 출발을 축하했다.

    결혼 40년을 넘긴 오상길(67)씨는 "옛날엔 왜 그렇게 서로 무심했었는지 모르겠다"며 "매주 두 번 아내와 강의를 들으면서 아내가 사소한 말 한마디에 섭섭해했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아내 얼굴이 밝아지니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며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혜자(64)씨를 보더니 "어쩐지 설레서 밥도 잘 못 먹겠다"고 농담을 건넸다. 다시 결혼하는 장인·장모의 사진을 찍던 사위 박기조(40)씨는 "예전엔 서먹서먹하셨는데, 이렇게 다정해진 모습을 보니 정말 기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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