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 없는 내일' '이수만과 365일' 아세요?

    입력 : 2010.11.16 03:25 | 수정 : 2010.11.16 07:58

    한국 옛 LP 수집광 '김창완 밴드'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
    한국 음악에 푹 빠진 일본인 음반 사 모으다 눌러앉아
    방안 가득 옛 LP 3000여장… "60~70년대 한국록, 세계 수준"

    "'이수만과 365일' 아세요? 이수만씨의 하드록 밴드예요. 이 음반 정말 좋아요. 보컬이 살짝 무리이긴 한데 '이 음악을 하고 싶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長谷川陽平·39)가 난생처음 듣는 한국 노래를 들려줬다. 그의 말대로 하드록 사운드에 실린 젊었을 적 이수만의 노래가 흘러 나왔다.

    서울 신촌의 한 오피스텔에 있는 하세가와의 방에는 1960~70년대 한국 LP가 그득했다. 1997년부터 한국에서 활동해 온 하세가와는 한국 옛 LP 수집광이다. 록 밴드 '곱창전골'과 '뜨거운 감자'를 거쳐 현재 김창완밴드에서 기타를 치는 그의 옛 LP 3000여장 가운데 2000장가량이 한국 음악이다.

    지난 11일 만난 그가 희귀음반을 연달아 꺼냈다. 신중현·서유석·이장희 같은 뮤지션의 음반은 물론이고 국악과 트로트까지 처음 보는 LP들이 수두룩했다.

    그 가운데 '결핵 없는 내일'이라는 음반도 있었다. 1969년 미국 평화봉사단이 내한해 녹음한 음반이다. 대한결핵협회와 공동으로 제작한 이 음반엔 '결핵 없는 내일'이라는 캠페인 곡을 포함해 '진도아리랑', '오봉산 타령' 등 14곡이 실려 있다. '결핵 없는 내일'을 틀자 "나라의 힘이 되는 국민의 건강 / … / 자기도 몰래 환자 된 사람 많으니 / 가래 검사 엑스레이 검사 / 둘 다 해야지" 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15년간 한국 옛 LP 2000여장을 모은 하세가와 요헤이는“내가 모은 LP들은 대부분 싸게 산 것들”이라며“최근 들어 200만원짜리 희귀음반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이 음반은 청계천 길거리에서 5000원쯤에 샀을 거예요. 뽕짝 코너에 섞여 있었는데 재킷이 독특해서 샀죠." 하세가와는 네 명의 무명 남성보컬그룹이 노래한 '넷소리 걸작 1집'을 꺼내 보이며 "한국의 유명한 음반 컬렉터도 갖고 있지 않은 희귀본"이라고 했다.

    그의 컬렉션에는 1968년에 나온 '국민교육헌장' LP도 있었다. 국민교육헌장 발표에 맞춰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담화문과 헌장제정 경과 보고 등이 담긴 레코드다. 1975년에 나온 '국기에 대하여 경례!!'라는 LP도 있었다.

    "제가 60~70년대 록음악을 무척 좋아해요. 그래서 한국의 당시 LP를 수집하기 시작했죠." 하세가와는 도쿄의 음반점에서 일하던 95년 처음 한국에 왔다. "지하상가에 LP점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 지하철을 뒤지다가 황학동 도깨비시장을 알게 됐다. "그때 양손에 들 수 없을 만큼 많은 LP를 샀다"고 했다. LP 한 장에 1000~2000원 하던 때였다.

    이후 자주 한국에 드나들면서 한국 뮤지션들을 만나고, 97년엔 아예 한국에 정착했다. 일본의 '뉴 록 신디케이트'란 밴드 멤버이기도 하다. 그의 한국 이름은 '김양평'이다. 요헤이(陽平)에 김씨 성을 붙여준 건 김창완이다. "너는 내 형제이니 김씨로 하자"고 했단다. "일본에선 조용필과 시나위, 부활 정도만 알았어요. 조용필은 엔카 가수인 줄 알았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까 로커더라고요."

    독일 밴드인 노이(Neu!)와 캔, 미국 밴드 텔레비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하세가와는 "한국은 세계 록음악 전성기인 60~70년대에 실시간으로 세계 수준의 록을 만들었다"며 "정치적 이유 때문에 많은 음악을 접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뮤지션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 같다"고 했다. 하세가와는 "특히 방송사에서 뮤지션이 음향장비를 조작하면 '뭘 안다고 만지느냐'고 혼내는 건 일본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 관객에 대해서는 대단히 만족해했다. "한국 사람들의 열정은 남미인들과 비슷한 것 같아요. 순간을 즐길 줄 알죠. 록 페스티벌에 가면 우리가 사운드 체크하고 있을 때 벌써 다이빙(관객 한 명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것)하고 있어요."

    하세가와는 앞으로도 한국 LP를 계속 수집할 계획이다. "레드 제플린이나 롤링 스톤스 음반은 언제 어디서든 살 수 있잖아요. 한국에서밖에 구할 수 없는 음반들을 계속 모을 생각입니다."


    ☞ 하세가와가 꼽은 '한국 록 명반'

    신중현과 엽전들(1974)

    '미인'의 첫 녹음 버전이 수록된 희귀음반이다. '미인'을 처음 들었을 때 기타 리프(riff·반복악절)에서 '한반도 록'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기 타고 한국에 처음 내렸을 때 맡았던 냄새를 이 노래에서 맡을 수 있다.

    장현 앤 더 맨(1972)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이 들어 있다. 재킷도 그렇지만 앨범 전체가 무척 어둡다. 당시 한국에서 산다는 것을 잘 표현하는 음반이다. 듣고 있으면 음반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느낌이다. 안개가 짙게 끼어 있는 매우 우울한 음반이지만 창작자의 심정을 상상하게 하는 명반이다.

    산울림 1집(1977)

    이 음반을 들으면 실용음악이나 작곡 이론이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음반이야말로 펑크(punk)다. "그냥 하면 되지" 하고 만든 것 같다. 작사, 작곡으로 만든 게 아니라 조각품이나 발명품 같다. 음악적 개성으로 따지면 세계 최고의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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