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서울 컨센서스' 역사에 남기자

    입력 : 2010.11.15 23:31

    김기천 논설위원
    최근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강하고 지속 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한 협력체계' '국제금융기구 개혁' '글로벌 금융안전망 강화' '금융시스템 변혁' '개발도상국 지원' 등과 관련한 많은 합의를 내놓았다. 가장 관심을 모은 이슈는 환율 문제와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이었다. 서울 정상회의에 대한 세계 언론의 평가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서울 개발 컨센서스'를 더 주목해야 한다. 지난 30년간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에 관한 지도 이념이었던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원칙과 비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몇 년 뒤엔 이번 정상회의 결과물 가운데 '서울 컨센서스'라는 이름 하나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서울 컨센서스는 경제성장의 중요성과 이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 없이는 저소득 국가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했던 워싱턴 컨센서스와 다른 점이다. "성공적인 개발을 위한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고도 했다. 규제철폐와 자유화,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경제 개발을 위한 9개 핵심분야의 첫 번째로 인프라를 거론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 지난 몇십 년 동안 국가 주도의 인프라 건설은 일종의 금기(禁忌)였다. 개도국의 인프라 투자는 국가를 빚더미에 올라앉게 하고, 부패한 관리들의 배만 불리는 낭비라고 했다. 서울 컨센서스가 그런 금기를 깬 것이다.

    시장과 경쟁, 효율만을 강조하는 서구식 개발전략에 대해 오래전부터 "개도국들이 경제발전을 위해 밝고 올라가야 할 사다리를 치워버리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인프라 건설과 수출산업 육성, 통화·환율·금융 규제, 국영기업 활용을 통해 경제발전의 성과를 이뤄냈는데도 서방세계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서울 컨센서스는 한국형 경제발전 모델, 더 나아가 아시아 모델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올라서는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통했던 방식이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통할 수 있는지를 검증받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지금의 개발경제학 교과서들은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 컨센서스는 아직 완성도가 떨어진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미 오래전 사망한 워싱턴 컨센서스의 관(棺)에 못질을 한번 더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실용적이고 다원적인 접근법을 선보였지만 논리적 일관성과 실행계획에서 더 다듬고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 서울 컨센서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데올로기 전쟁을 벌였다"고 할 정도로 많은 저항과 갈등이 있었다. 국가 개입의 정도와 정책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선진국과 신흥·개도국, 세계은행을 포함한 국제개발·원조기구, 비(非)정부기구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은 G20 의장국으로서 이번 정상회의를 주재하면서 국제 사회의 룰(rule)을 만드는 과정에 직접 참여해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그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서울 컨센서스를 경제 개발의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끌어올리는 게 이제부터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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