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민의 평점 따윈 필요없어]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남자라면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

  • 이지민·소설가

    입력 : 2010.11.15 03:03

    우리 뇌에는 생물학적으로 '용서'라는 칩이 내장돼 있단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일을 당해도 파멸로 귀결되지 않도록 '복수'와의 타협점을 찾는다는데, 과연 젊고 아름다운 신부가 처참하게 강간 살해당했으나 그 범인은 권력의 비호 아래 출세 가도를 달리는 현실 앞에 '용서'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까. 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는 25년 전 일어난 이 비극적인, 일명 '모랄레스 사건'에 관련된 두 남자의 삶과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 첫 번째 남자,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보 벤야민 에스포지토는 은퇴 후 소설을 써보려고 머리를 쥐어뜯던 중 결국 가장 힘든 이야기가 가장 절실한 이야기라는 작가의 숙명을 깨닫고 모랄레스 사건을 소설로 쓰기로 한다. 그는 그 일로 안타깝게 헤어져야 했던 자신의 상사이자 사랑한 여인 이레네를 찾아간다. 그에게 이레네의 존재는 오랜 세월 마음에 매달아 놓은 커다란 바위 같은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사건과 함께 신분의 차이로 이레네를 잡지 못한 일 또한 깊은 회한과 죄책감으로 남은 것. 어쩌면 그가 써야 할 것은 소설이 아니라 그녀와의 못다 한 사랑인지 모른다.

    에스포지토처럼 사람은 누구나 가슴 깊숙이 소설로 풀어 보고픈 이야기 하나쯤 숨겨두고 있지 않을까.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에서도 화자인 브리오니가 과거 자신의 오해로 일어난 비극에 대한 죄의식으로 소설을 쓴다. 그 소설로 복수를 이루고자 하나 소설은 결코 행동대장이 될 수 없다. 못다 한 사랑이든 복수든 그것을 이루어 내는 힘은 따로 있다. 모랄레스 사건과 관련된 두 번째 남자, 바로 피해자의 남편 모랄레스가 그것을 알려 준다. 아, 아내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해 퇴근 후 매일 역에서 기다리던 그의 눈빛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영화의 반전이기도 한 그의 복수는 억울한 아내의 죽음 앞에 무능력했던 자신과 한 시대를 용서하기 위한 최후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두 남자는 결국 인생의 숙제를 풀기 위해 무모하든 어리석든 던질 수 있는 모든 열정을 다한다. 영화는 말한다. 남자에게는 얼굴, 여자, 종교, 신까지 모든 걸 다 바꾸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고. 그것은 바로 그의 '열정'이란 것!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두 남자의 끝나지 않는 열정으로 영화는 늦가을 오후처럼 빛난다. 낙엽뿐이지만 아름다운 늦가을 어느 오후처럼.

    엘 시크레토=감독 후안 호세 캄파넬라. 출연 솔레다드 빌라밀, 리카도 다린. 11월 11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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