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노인요양원 화재 참사 "2층 친정 엄마는 살았지만 1층 시어머니가…"

    입력 : 2010.11.13 02:59

    신고 늦어 15분 뒤 진화 시작 할머니들 기어서 탈출 시도… 소방관들이 안고 빠져나와

    "친정 엄마가 시어머니 소식부터 물어봤는데 돌아가셨다는 말이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12일 오후 2시 빈소도 차려지지 않은 경북 포항 세명기독병원 장례식장 한쪽에서 최영란(43)씨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만 쏟고 있었다. 최씨는 이날 새벽 경북 포항 인덕노인요양센터 화재 때 친정 어머니 조연화(75)씨가 간신히 목숨을 건져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시어머니 정귀덕(78)씨는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 충격을 받았다.

    건물 겉은 깔끔했지만… 12일 오전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인덕노인요양센터 앞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최씨는 "포항의 다른 요양원에 모시다가 3년 전 새로 생긴 인덕노인요양센터가 집에서 가까워 옮겨 모셨다"며 "친정 어머니도 같이 계시면 적적하지 않겠다 싶어 함께 모셨다"고 했다. 중증 치매에 중풍을 앓던 시어머니는 1층에, 가벼운 치매 증상을 보이는 친정 어머니는 2층에 머물게 했다.

    사돈의 사망 소식을 들은 최씨 친정 어머니는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최씨는 "친정 엄마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네 시어머니는 어디에 계시냐' '시어머니부터 보살펴야지'라며 계속 안부를 물으시는 통에 사실대로 말씀드렸다"며 고개를 떨궜다. 최씨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울부짖었다.

    12일 새벽 화재로 노인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한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노인요양센터 내부가 불에 타 검게 그을렸다. /이재우 기자 jw-lee@chosun.com
    이날 오후 3시 노인 27명의 사상자를 낸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인덕노인요양센터 2층 건물 화재 현장은 화재 진압 후 10시간이 지났지만, 건물 안쪽에서부터 불에 탄 냄새가 흘러나왔다. 불이 난 1층은 거실 천장과 바닥, 벽면 등 내부가 온통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발화 지점으로 추정되는 사무실 옆의 방 2곳도 사방이 그을음이었다. 이날 오전 발생한 화재로 이 방에서 자던 할머니 11명 중 10명이 연기에 질식해 사망했다. 모두 치매와 중풍 등으로 걷기조차 어려운 할머니들이었다.

    1층 할머니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송이(86)씨는 "잠이 안 들어 새벽까지 깨어 있었는데 정전이 되더니 방으로 연기가 조금씩 들어왔다"며 "'불이야!'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1층에서 자던 요양보호사가 와서 날 붙잡고 질질 끌면서 겨우 밖으로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불이 나자 2층에서 공포에 떨던 할머니 16명은 소방관들에 안겨 탈출했다. 생존자 김순이(90)씨 아들 김영환(64)씨는 "어머니가 기어서 나오려고 하셨는지 병원에서 만난 어머니 손바닥에 검은 그을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며 "화재로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어쩔 줄 몰라하다가 2층에 진입한 소방관이 이불에 어머니를 둘둘 싸고 안아서 겨우 빠져나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경찰은 "최초 목격자로 1층 거실에서 잠을 자던 요양보호사 최모(63)씨가 오전 4시 15분쯤 119에 신고하는 대신 30m 떨어진 포스코기술연구소 경비실에 처음 알렸다"며 "다시 경비실에서 포스코 자체 소방서에 신고했고, 다시 포항남부소방서로 신고가 접수되면서 초동 대처가 늦었다"고 밝혔다.

    오전 4시 15분쯤 화재가 발생했고 4시 29분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으니, 발화 후 적어도 15분이 지나서야 진화가 시작된 셈이다.


    ▲사망자(10명)
    김분란(84), 김복선(83), 김송죽(90), 김희순(71), 권봉순(95), 양정석(87), 장후불(73), 정귀덕(78), 정매기(76), 형순연(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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