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박물관의 '한국실'은 2000년대 들어 르네상스를 맞았다. 1980년 이전에는 15개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2개국 60여개 이상의 박물관에 한국실 또는 한국 구역이 설치돼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해외 박물관에서 일하는 한국인 큐레이터 7명이 함께 모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병국)이 개최하는 '제12회 해외박물관 큐레이터 워크숍' 참석차 방한한 이소영(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김현정(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 우현수(필라델피아 미술관), 김진영(코리아 소사이어티 미술관), 선승혜(클리블랜드 미술관), 김민정(호주 파워하우스 미술관), 박경숙(호주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씨. '우리 문화유산의 해외 전령'으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생생한 육성을 옮겼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건 김정일?'
▲김현정=지난해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한국현대미술 12인'전을 기획하면서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설문조사를 했다. 중국은 천안문, 일본은 스시, 한국은 김정일이었다.
▲김진영=아직도 미국인들 머릿속의 한국 역사는 6·25전쟁에서 끝나 있다. 몇 년 전에 한국의 만화를 소개하는 기획전을 열었는데 "한국에도 만화가 있어?" 하더라.
▲김민정=호주 사람도 마찬가지다. 신라 금관 사진을 보여줬더니 "요즘 쓰는 거냐"고 물었다.
◆우여곡절 전시 준비는 힘들지만
▲우현수=2003년 뉴욕의 재팬 소사이어티(Japan Society)에서 한국 국립경주박물관, 일본 나라국립박물관과 공동으로 '한국과 일본의 초기불교 미술전'을 열었다. 한국 유물은 다 왔는데, 일본 유물 도착 하루 전에 이라크 전쟁이 터졌다. 하늘이 노랗더라. 우여곡절 끝에 전시가 열렸고, 그해 뉴욕타임스에서 '올해의 좋은 전시'로 꼽혔다.
▲선승혜=일본 미술은 많이 알려져서 애호층이 많다. 그래서 일본 미술과 한국 미술을 비교 전시하는 특별전을 열겠다고 했더니 쉽게 풀렸다. 한국 문화만 따로 떼어내 설명하는 것보다 동아시아의 큰 틀에서 우리 문화의 특징을 설명하면 쉽게 공감한다.
▲박경숙=한국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 미술이 '블루오션'이지 않을까. 내년이 한·호(濠) 수교 50주년이라 한국에서 유물을 대여해 특별전을 열 생각이다.
◆국내 인식도 바뀌었으면
▲우현수=해외 박물관의 한국실을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인식은 이중적이다. 해외여행 때 박물관 가면 "중국실, 일본실은 이렇게 크고 유물도 좋은데 한국실은 왜 이렇게 볼품없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좋은 작품이 있으면 "이렇게 좋은 게 왜 여기 나와 있어?" 한다.
▲선승혜=해외 박물관 한국실은 공간과 유물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단기특별전을 기획해서 여는 게 중요하다. 훨씬 더 좋은 우리 문화재를 한자리에서 큰 규모로 보여줄 수 있다.
▲김현정=지난해 LACMA 한국관 재개관 때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을 빌려와 전시했더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한국의 절대미(美)를 보여줘서 뿌듯했다.
▲이소영=좋은 문화재가 오면 미국 내에서 관심 있는 관람객은 다 보러 온다. 한국에 있는 유물을 대여할 때 조금 더 관대했으면 좋겠다. 한국인 큐레이터들이 있는 곳으로 집중해서 좋은 유물을 보내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