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세 번 절하고 고개 들어 그 그림을 보았습니다

  •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 이철원

    입력 : 2010.11.02 23:06 | 수정 : 2010.11.03 00:48

    센소지 주지가 수월관음도를 펼쳤다
    물방울 안에 서있는 관음보살 유려한 자태에 절로 나온 찬탄
    세 번 절하고 합장을 했다 화려함과 우아함
    그동안 우리가 잊었던 고려 문화의 정수였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나는 10여년 전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한 '고려국보전'에서 고려불화를 처음 만났다. 보관(寶冠)을 쓰고 사람 키의 두 배를 훌쩍 넘는 4m 길이의 관음보살의 웅장한 자태에 압도됐다. 그것도 이음매 없이 한 폭의 대형 비단에 그려져 있는 게 신비로웠다. 오른팔에서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걸쳐져 우아함을 더한 사라(베일)며, 불도를 구하는 선재(善才)동자에게 보내는 보살의 자애로운 시선까지….

    그것은 고려 충선왕 왕비였던 숙비가 8명의 궁정 화가를 동원해 700년 전인 1310년에 그린 '수월관음도'였다. 나는 이 불화 앞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일본에서도 한 해 38일만 공개한다는 사가현 가가미진자(鏡神社)의 그 그림을 내 눈에 담고 아로새겼다. 금니(금가루)로 장식된 고려불화의 화려하고 우아하며 또한 섬세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전통문화의 특징을 과연 '소박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후 우리 문화의 정수라고 하는 고려불화가 왜 고국을 떠나 이토록 외국에 흩어져 있는 것인지에 대한 안타까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2년 전 내가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에서 고려불화 특별전을 하자고 했다. 고려불화는 지금 전 세계에 남아있는 게 160여점가량인데 국내에는 고작 10여점만 있을 뿐이다. 일본에 130여점, 미국과 유럽에 10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간혹 외국에서 고려불화를 몇 점 들여와 특별전을 연 적은 있었으나 많은 작품을 한데 모으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외국에 있는 소장자나 박물관들이 얼마나 협조해줄지 걱정부터 앞섰다.

    우선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프랑스의 기메 박물관 등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이들 박물관에는 한국실이 있는데다 협조 관계가 있어 흔쾌히 보내주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국력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하지만 일본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아직 한 번도 원본을 내보인 적 없는 작품이 있는데다, 절에 있는 고려불화들은 '신앙 대상'이지, '관람 대상'이 아니라며 쉽게 응하지 않았다. 결국 관장인 내가 직접 일본까지 가기로 했지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일본 나고야 도쿠가와 미술관은 대여는커녕 관람조차 어렵다며 방문을 사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도쿠가와의 '대망(大望)'이란 소설이 많이 읽힐 정도로 유명하다"고 인사하자, 도쿠가와 후손인 관장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아미타 팔대 보살도'등 2점을 보내달라 했는데 1점은 보관상태가 나쁘다며 화엄경을 대신 내주기로 했다. 이것은 우리가 알지도 못했던 유물이었다.

    고려불화 명품 중의 명품을 갖고 있는 도쿄의 센소지(淺草寺)를 찾아갔다. 이곳의 '수월관음도'는 일본 내에서도 좀처럼 공개하지 않아 한국인으로 실물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지 스님이 내어 온 수월관음도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세 번 절한 다음 무릎을 꿇고 합장했다. 물방울 광배(光背) 안에 서 있는 관음보살 앞에 찬탄이 절로 나왔다. 관음보살이 딛고 선 연화좌는 물속에서 솟아나 있었고 물결무늬는 먹선으로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결을 보여주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처럼 힘 있고 세밀하고 유려한 선, 고구려를 이은 고려가 내게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주지 스님은 "불교 신자냐"며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이렇게 경배할 정도라면 그림을 보내줘도 소중하게 다룰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절에서는 "한국에서 문화재 환수 분위기가 있어 잘못하면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불안해했다. 일본 정부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도쿄국립박물관이 보증을 서줘 700년 만에 현해탄을 건너오게 됐다. 보물 중의 보물 수월관음도가 고향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고려불화는 그 기원을 서하(西夏)로 보고 있지만 그동안 서하시대 진품을 본 학자들은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소장한 서하시대의 '아미타내영도(來迎圖)'를 특별히 요청했고, 마침 우리 박물관에서 기획한 한국미술 특별전이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열려 유물 귀국 때 아미타내영도를 만나는 행운도 따랐다. 마침내 44개 박물관·미술관에서 보내온 60여점의 고려불화로 고려불화대전을 열 수 있었다.

    고려불화전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한국 문화의 특징이 검소함, 소박함이 아니라 오히려 화려함과 우아함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우리가 흔히 한국문화의 특징을 소박과 검소함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특징이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벽화의 역동성과 색채감, 백제 금동대향로의 정교함과 우아함, 신라 금관의 섬세함과 균형감을 떠올려 보자. 삼국시대의 이러한 전통이 고려로 이어져 화려하고 우아한 고려불화와 고려청자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많은 고려불화가 외국에 나가게 된 이유로는, 일부는 왜구가 약탈해가기도 하고 일부는 일본의 요청이나 구입을 통해 넘어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G20 정상회의의 첫날 리셉션과 만찬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게 된다. 세계 각국 정상 33인은 한국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고려불화도 함께 감상할 기회를 갖는다면 그 화려함과 우아함, 섬세함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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