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김정일, 부인 사망후 개인비서와 동거

    입력 : 2010.10.31 16:07 | 수정 : 2010.10.31 16:25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지난달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며 최종 후계자로 지목됐다.

    여성조선 11월호는 김정일가의 권력 계승 관계가 조선시대 세자 책봉과 닮았다고 분석했다. 여러 부인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 중 후계자를 고른다는 점, 어머니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여성조선에 실린 ‘여인을 중심으로 알아본 김정일가 이야기’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의 정부인으로 알려진 여인은 김영숙 한 명 뿐이다. 김영숙의 아버지는 일제시대 빨치산 전투 시절부터 김일성 주석의 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숙은 김 위원장 사이에서 두 딸 설송과 춘송을 낳았지만 그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김영숙 외 나머지 여인들은 동거녀 신분으로 부인 대우를 받았다. 정식 부인 대우를 받은 여인 중 첫 번째는 성혜림(1927~2002)이다. 경남 창녕 출신의 성혜림은 1948년 아버지를 따라 월북했고 소설가 이기평의 아들 이평과 결혼했다. 딸도 하나 두었다. 그러나 원치 않았던 결혼이라 행복하지 못했고 둘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됐다.

    북한에서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성혜림은 이혼 후 김 위원장을 만났다. 연애를 시작하던 당시 김 위원장은 28세였고 그녀는 33세였다. 1969년부터 김 위원장과 동거에 들어갔고, 1971년 김 위원장의 장남인 정남을 낳았다.

    그러나 성혜림은 아들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김정일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심한 정신 장애를 겪기 시작했다. 성혜림은 김 위원장의 새 여인 고영희의 견제에 시달리다가 1996년 서방으로 망명, 스위스 등 외국에서 장기간 거주하며 요양하다 지난 2002년 5월 모스크바에서 사망한 뒤 현지에서 안장되었다.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부인은 고영희(1953~2004)이다. 고영숙은 김 위원장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의 생모로, 북송 재일교포 출신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북한으로 건너왔다. 유명한 혁명 무용 ‘눈이 내린다’의 주인공인 그녀는 1976년부터 김 위원장과의 동거에 들어갔다. 1981년 아들 정철을 낳았고 이어 정은, 여정을 낳았다.

    2001년부터 김정일은 인민군 사찰을 가거나 공개 행사에 고영희와 동행하곤 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고영희 우상화 작업을 시작했으나 그녀가 2004년 5월 유선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이 작업은 중단됐다. 유선암이 아닌, 뇌경색이나 다른 원인으로 사망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고영희 사망 후 사실상 북한의 퍼스트레이디로 실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김 위원장의 개인비서 김옥(46)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김 위원장의 기술서기(간호 등을 수행)로 일했던 그녀는 2006년부터 김 위원장과 동거에 들어갔다.

    김 위원장의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옥은 김 위원장에게 가족 같은 존재라면서 고영희와 자매처럼 관계가 좋았다고 밝혔다. 김옥은 2006년 1월 김정일의 방중 시 ‘국방위원회 과장’ 자격으로 동행하면서 그의 곁에서 중요한 내용을 빠짐없이 메모하는 등 세밀하게 보좌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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