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7080세대 사랑방… 춘천 '이디오피아집'

  • 춘천=글·사진 유연태(여행작가)

    입력 : 2010.10.23 03:02 | 수정 : 2010.10.24 17:03

    아들은 커피향에, 아버지는 추억에 빠져들지요

    "춘천 여행? 이디오피아집 커피를 마셔야만 제대로 된 여행이었죠." 7080세대들은 이 커피집을 이렇게 회고한다.

    별다방, 콩다방 등 무수히 많은 커피전문점이 등장한 요즘에도 춘천 공지천교 옆의 커피하우스 '이디오피아집'(춘천시 근화동 371-3, 033-252-6972)은 예전의 명성을 낭창낭창 이어간다. 1968년 개업했으니 40년 역사가 넘는다. 창업자는 조정민(84)씨, 김옥희(83)씨 부부. 지금은 딸인 조수경(50)씨와 사위 차중대(52)씨 부부가 대를 이어 커피 맛을 지켜나가고 있다.

    춘천의 명물 '이디오피아집'은 창업한 지 40년이 넘었다. 창업주의 대를 이어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조수경ㆍ차중대씨 부부

    요즘의 젊은 여행자들은 시원하게 뚫린 경춘고속도로를 타고 달려와 에티오피아 커피의 진한 맛에 빠져든다. 시다모·예가체프·짐마 등을 블렌딩한 에티오피아 커피는 신맛, 쓴맛에 과일 향까지 골고루 섞여 커피 마니아들을 사로잡는다. 그에 비해 중장년층들은 젊은 날의 향수가 그리워서 이디오피아집을 찾아온다. 때로 성장한 자식들을 동반한다. "우리 연애할 때는 말이야…"가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공통의 레퍼토리이다.

    커피 값도 변화했다. 개업 당시의 커피 값은 50원. 종업원 월급이 6000∼8000원이었으니 만만찮았다. 그래도 원두커피를 맛볼 수 있었기에, 이디오피아집 커피를 마셔야 춘천 여행을 제대로 한 것이기에 커피 애호가들은 기꺼이 그 돈을 지불했다. 그 후 커피 값은 200원, 600원, 1000원을 거쳐 현재는 아메리카노 레귤러 커피가 5000원이다.

    하고많은 상호 중에 왜 하필 '이디오피아집'일까? 사연은 1968년 5월 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지천변에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탑' 제막식이 있던 날, 하이레 셀라시에 황제가 참석했다. 그날 황제가 말했다. "이 쉼터에 에티오피아 벳(집)을 지으면 좋겠다. 한국과 에티오피아 문화교류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그로부터 3개월 만에 이디오피아집이 완공됐고 조정민씨는 '이디오피아집'에서 에티오피아산 원두커피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커피집 입구의 안내판은 '1972년 11월 24일 셀라시에 황제가 이디오피아집이라고 명명'했음을 밝혀주고 있다.

    설탕을 넣어서 마셔야 제 맛인 이디오피아의 에스프레소.
    1974년 에티오피아가 공산화되자 큰 어려움이 닥쳤다. 커피집 내부의 에티오피아 관련 사진들은 모조리 철거됐고 '이디오피아집'이라는 상호도 못 쓰게 했다. 에티오피아 커피 수입도 중단됐다. 그때 김옥희씨가 강력하게 항의했다. "에티오피아는 6·25전쟁 참전국가이다. 그런 우방국의 이름을 왜 못 쓰게 하느냐?"

    이후 이디오피아의 집은 한때 음악다방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가수 박인희·양희은씨가 디제이를 봤고 코미디언들은 커피 마시러 놀러 왔다가 즉석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당시 춘천시내 명동에는 코스모스·준 등 두 개의 음악다방이 더 있었으나 지금까지 살아 남아 있는 것은 이디오피아집 하나이다. 그뿐 아니라 소설가 이외수씨가 매일 출근해서 글을 쓰는 등 춘천 예술인들의 사랑방 구실도 해냈다. 지금도 서울의 연극인들은 술을 마시다가 '이디오피아 가자'를 외치고 곧장 찾아오기도 한다. 춘천고나 춘천여고 학생들도 졸업식이 끝나면 이디오피아집을 찾아 커피 한잔 또는 위스키 한잔 마시는 것으로 성인식을 대신했다는 이야기도 전설처럼 전해진다.

    커피하우스는 1년 365일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문을 연다. 단 1월 1일에만 낮 12시부터 손님을 맞이한다. 1980년대 초반, 김옥희씨가 하루 쉬자 '매일 문을 열던 집이 왜 이래?'하면서 손님들이 유리창을 모조리 부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그 일 이후로 쉬는 날이 사라졌다.

    딸 조수경씨는 본래 영화 특수분장사이자 시나리오 각색자였으나 부모의 뒤를 이어 이디오피아집 안주인이 되었다. 사위 차중대씨는 이탈리아에서 외과의사로 20년 살다 미국 의학관계 연구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바리스타'다. "이탈리아에서 하루 10잔, 20잔씩 커피를 마셨습니다. 북부 지방의 비첸차와 볼차노, 중부 지방의 움베르티레 에스프레소가 제 기호에 가장 잘 맞더군요. 누구나 거부감 없이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만들어내는 곳은 로마와 피렌체이고요. 오랜 이탈리아 생활 탓인가요,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최고의 커피로 손꼽고 싶습니다."

    이디오피아집 커피를 마셔야만 춘천 여행을 제대로 했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 명물 카페 앞에서 젊은 여행자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차중대씨는 외과의사 출신답게 로스팅 과정에서부터 추출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차를 용납하지 않는다. 조수경씨도 커피 맛을 좌우하는 요소를 요리조리 분석한다. "우선 커피 재료가 50%를 차지하고요, 날씨·분위기·조명·음악 등이 나머지를 차지합니다. 참, 우리 집은 천 의자는 쓰지 않고 가죽의자를 사용해요. 커피 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이디오피아집에는 오래된 것들이 더 있다. 공지천을 바라보기에 좋은 통유리창 섀시는 25년, 출입구 벽면의 타일은 38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나무 복조리는 42년의 세월을 견뎌냈다.

    손님이 뜸한 밤 시간, 차씨 부부는 출입문 오른쪽의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내년에는 단골손님들과 이탈리아 커피 기행이라도 다녀올까 합니다."

    "에티오피아 커피 농장 방문이 더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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