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호] 귀순자

    입력 : 2010.10.20 03:02 | 수정 : 2011.01.06 10:17

    북한군 대위 안창식 휴전선 처음 넘어와

    지금은 탈북자란 용어를 쓰지만 예전에는 '월남 귀순 용사' '귀순 북한 동포'란 말을 썼다. '월남 귀순 용사' 1호는 통일부에 따르면 1953년 7월 31일 휴전선 중동부 전선 비무장지대를 넘어온 북한군 대위 안창식(安昌植)씨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 첫 귀순용사였다.

    당시 본지 보도(1953년 8월 3일자 2면 '괴뢰군 대위 휴전선 넘어 귀순'·사진)에 따르면, 안창식씨는 함경남도 갑산군 상남면 출신으로 북한군 15사단 사령부에 근무하다 월남했다. 귀순 직후 그는 우리측에 "북한군 3분의 2가 격파당해 남침은 고사하고 전선 방어도 담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진술했다. 당시 우리 군은 빨치산들의 투항을 권고하기 위해 지리산 일대에 뿌린 '지리산 특보'(삐라의 일종)에서 안씨의 귀순 사실을 선전하기도 했다. 안씨는 49년간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다가 2002년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통일부는 밝혔다.


    그해 9월 21일에는 노금석 상위(대위)가 미그-15기를 몰고 김포공항으로 귀순했다. 미그-15기는 당시 소련제 최신예 전투기로, 6·25 당시 미군 폭격기 B-29기가 미그-15기에 의해 대거 격추되었다. 미국은 이에 미그-15기를 몰고 귀순하면 10만달러와 함께 미국 시민권 보장을 내걸고 선전하던 시절이었다. 노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교수가 돼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귀순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은 시대에 따라 달랐는데 1950년대만 해도 관련 법조차 없었다. 보상 규정이 마련된 것은 1962년 4월 16일이다. '국가유공자 및 월남귀순자 특별원호법'에 따라 정착수당을 1~3급으로 차등 지급했고, 국·공립주택 우선 입주 혜택도 줬다. 특히 당시 귀순자는 대부분 군인이어서 군사 기밀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법이 제정됐다고 한다.

    체제 경쟁이 극에 달했던 1978년에는 '월남귀순용사 특별보상법'이 시행됐다. 그해 10월 13일 월남한 권정훈 하사가 이 법의 첫 번째 수혜자다. 북한군 상사로 1979년 7월 27일 귀순한 안찬일씨는 "서울 용산에 30평짜리 집과 두둑한 정착금은 물론, 취업 알선까지 받았다"고 했다. 안씨는 대학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3월 26일 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탈북자들은 정착금, 주거지원금, 지방거주 장려금, 정착 장려금, 가산금, 고용지원금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국내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탈북자)은 8월 말 현재 1만956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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