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1997년 2월 베이징에서 한국 망명을 신청한 직후부터 가족 숙청, 끊임없는 테러 위협 등에 시달려 왔다.
김정일 위원장은 황 전 비서에게 가혹한 '피의 복수'를 단행했다. "배신자여 갈 테면 가라"며 위해를 암시했던 김 위원장은 황 전 비서의 직계 가족뿐 아니라 공적(公的)·사적(私的)으로 관련을 맺었던 2000여명을 숙청했다. 숙청 이후 김 위원장은 "아들·딸·손자를 내버린 자를 어떻게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겠나"며 "개만도 못하다"라고 황 전 비서를 격렬히 비난했다.
‘김일성 사상’으로 통하는 주제사상을 체계화했던 황 전 비서는 1960년대 초 김일성대에서 김정일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쳤다. 그러나 제자는 스승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보이며 그의 죽음을 위협했다.
지난 4월 "가장 너절한 변절과 배신으로 현대판 유다로 저주받는 황가 놈은 결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김 위원장은 고정간첩 등을 통해 황씨의 행적을 지속적으로 추적해 왔다. 올 초엔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총국장 김영철(노동당 중앙군사위원)이 직접 남파한 무장간첩이 암살을 기도한 사실도 공안당국에 적발했다. 탈북자를 가장해 국내로 들어왔다가 올해 4월 검거된 동명관(36) 등 공작원 2명은 김영철로부터 "황가 놈이 자연사(自然死)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황장엽의 목을 따라"는 지령을 받았다.
북한에 군사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지난 6월 기소된 전직 안기부 대북공작원 '흑금성'도 북측 공작원에게서 "황장엽의 주거지와 동선을 파악하라"는 임무를 받고 활동했다. 또 2006년 탈북자로 위장해 활동하다 검거된 고정간첩 원정화(36)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통해 황씨에게 접근하려 시도했던 사실을 검찰이 적발했다.
“암살범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다”며 의연하던 황 전 비서였지만 북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해서는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망명 당시 아내 박승옥에게 남긴 유서(遺書)에서 “나 때문에 당신과 사랑하는 아들·딸(1남3녀)들이 모진 박해 속에서 죽어가리라고 생각하니 내 죄가 얼마나 큰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며 “(당신은) 나를 가장 가혹하게 저주해 주기를 바란다”고 썼다. 그는 이어 “내 생애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다”면서 “저 세상에서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