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주사파였던 제가 황 선생을 보내며

    입력 : 2010.10.10 23:30

    반잠수정 타고 방북했던 나는 주체사상 연구조차
    하기 어려운 곳이 북한이란 사실을 알았다
    답답해하던 그를 북한 민주화 착수도 못하고 보내야 한다니…

    김영환·계간 시대정신 편집위원

    나는 1991년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북한의 주체사상 학자들과의 토론회를 요구했고 황장엽 선생의 제자들인 당시 40대의 학자들과 장시간에 걸친 토론을 가졌다. 이들은 매우 똑똑하고 지식이 많았지만 주체사상의 다양한 이론적인 문제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하지 못했다. 주체사상의 핵심적인 이론적 문제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마음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철학자나 사회과학자들에게 있어 북한은 참 답답한 곳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몇 년 후에 나는 후배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전 세계에서 주체사상 연구의 자유가 가장 억압된 나라가 어딜까?" 그 후배는 "글쎄요. 아마 국가보안법이 있는 우리 한국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별의별 책도 다 보고 우리끼리 모여 주체사상에 관한 토론도 마음껏 하지 않느냐. 주체사상 연구의 자유가 가장 억압된 나라는 바로 북한이다"라고 대답해준 적이 있다.

    바로 그 북한에서 주체철학의 창시자인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해왔을 때 나는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황 선생이 북한에서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가족을 희생시키고 친지들과 제자들을 고통에 몰아넣으면서까지 망명 길을 택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고 대단한 결단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주체 철학의 창시자로서 자신이 만든 철학이 김일성과 김정일의 수령 우상화 도구로, 권력유지의 도구로, 인민을 속이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고통이 망명으로 인해 생기는 희생을 참는 고통보다 몇 배 더 컸을 거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의 수령 우상화 체제에 일조하면서 북한 인민의 고통을 불러온 것에 대한 죄책감을 북한의 해방과 통일을 위해 헌신하면서 극복하려고 했던 것은 양심적 학자로서 당연한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황 선생이 한국에 오자마자 바로 만나고 싶었지만 당시 주체사상파(주사파)의 대부로 알려져 있던 내가 황 선생을 만나자고 하면 정부에서 이를 허가해줄 리가 만무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황 선생을 만나게 된 것은 1999년 9월 국가정보원 조사실에서였다. 나는 그때 구속되어 과거 지하당 활동에 관해 조사를 받고 있었다.

    나는 구속된 초기부터 황 선생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황 선생도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조사 막바지에 만날 수 있었다. 황 선생은 그때 "빨리 조사받고 나와서 함께 활동하자"고 두 번이나 강조해서 말했다.

    당시 내가 구속되기 전 3~4년 동안 개인적으로 써서 보관하고 있던 글들에 대해 국정원 수사관이나 검사는 그냥 북한식 공산주의 이론을 풀어쓰거나 합리화한 글로 간주하고 이적(利敵) 표현물로 함께 묶어 입건하려고 했었다. 그들이 이론적인 문제에 관해 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황 선생은 한눈에 그것이 북한식 공산주의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글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국정원에 국가보안법 피의자로 구속되어 있던 나를 첫 만남에서부터 동지(同志)로 대해주었다.

    구속에서 풀려난 후 지금까지 150여 차례 황 선생을 만나면서 철학과 한반도 정세, 북한 민주화 전략 등에 관해 토론했다. 황 선생과 만날 때마다 늘 황 선생이 답답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황 선생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하에서 활동의 자유가 제약받는 것에 대해 답답해했고 당신의 철학에 관해 사람들이 무관심한 것에 대해 답답해했고, 대북전략을 짜는 곳에서 당신의 말을 흘려듣는 것에 대해 답답해했다.

    황 선생은 한국으로 와서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이 당신의 지식과 지위와 열정을 100% 이용해주길 원했는데 우린 그걸 10~20%도 제대로 쓰질 못 했으니 참으로 원통한 일이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황 선생이 나를 별도로 불러서 갔더니, 매우 대담한 전략전술을 새롭게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그 연세에도 실천 활동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불태우신 것이다.

    나는 지금 황 선생과 함께 하고 싶었던 많은 연구활동과 실천활동을 제대로 착수도 하지 못 한 채 황 선생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과 허전함, 답답함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감정은 최소한 몇 년간은 계속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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