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기업이 몸을 던질 만한 사회적 기여

  •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입력 : 2010.09.29 22:58 | 수정 : 2010.09.30 11:27

    통념과 달리 우리 몸에 흐르는 과학적 DNA
    이 전통을 인터넷시대에 이으려면
    기계번역기술과 한글 고등지식 문화 절실… 기업이 기여할 분야 아닌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 21일 서울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기습 폭우가 쏟아져 큰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21일 하루 동안 서울에 259.5mm의 비가 내렸고 이달 들어 서울지역의 강우량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8년 이래 102년 만에 가장 많았다고 한다. 어쩌면 568년 만에 가장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 측우기(測雨器)를 만들어 과학적으로 빗물을 재기 시작한 것이 1442년 세종 24년의 일이니 말이다. 전상운 박사의 '한국과학사'에 따르면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강우량을 푼 단위(지금의 약 2mm)까지 과학적으로 측정하기 시작했고 측정된 강우량은 제대로 집계되어 전국의 강우량이 정확히 기록 보존되었다. 강우량만이 아니다. 수표(水標)를 설치하여 강물의 수위도 측정했고 바람깃대, 풍기죽(風旗竹)을 만들어 풍향과 풍속도 오랫동안 관측했다. 전상운 박사는 "15세기 전반기에 이렇게 기상 관측이 양적계측기(量的計測器)에 의해 전국적인 규모로 이루어진 것은 한국에서뿐이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서울대 허성도 교수에 의하면 조선시대 과학의 우수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1400년대 세종 시대의 학자 이순지(李純之) 등은 임금의 뜻을 받들어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들어 냈다. '칠정력(七政曆)'이라 불렸는데 당시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日蝕)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아라비아, 중국 그리고 조선밖에 없었다고 한다.

    세종 때의 학자들은 우리의 역법(曆法)을 이슬람력(회회력)이라고 하지 않고 태양과 달, 5행성의 운행을 계산하는 칠정산의 외편(外篇)이라고 이름 지었다. 매우 학문적인 이름이다. 이순지 등은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에서 한양의 위도는 38도이고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 계산해 놓았다. 실제와 1초 정도 차이가 나고 현재 파이(π)라고 부르는 밀률(密率)값은 3.14159라고 계산했다. 또한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을 하면서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月蝕)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고 설명했다.

    이런 과학적 전통이 조선시대 들어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682년에 국립대학인 국학(國學)에는 두 과가 있었는데 하나가 철학과이고 다른 하나가 수학과이다. 15세에서 30세까지의 청년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간 기하학(幾何學)과 방정식 등 여러 가지 수학을 가르쳤다. 조선 태종 3년(1403년)에는 중국 책 의존을 줄이기 위해 동활자(銅活字) 인쇄술을 추진해 책을 널리 보급시키게 하였다. 이런 제도와 과학기술 그리고 자주 문화의 의지가 세종 때 이르러 우리나라를 과학 문화 창조의 시대로 꽃피우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트위터에서 필자 세대를 '인터넷이 없었던 삶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라고 정의한 글을 보았다. 재치 있는 표현이라 느꼈다. 그렇다. 이미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힘들게 되어버렸다. 그런데 600여년 전 태종이 인쇄술이라는 국가적 인프라에 주목했던 것처럼 우리가 사회적으로 주목해야 할 일이 있다. 그 하나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사람 언어의 이해, 생성 및 분석을 다루는 인공지능기술인 자연어 처리 기술 개발에 집중적인 투자를 통해 한글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대하고 소통하는 데 큰 문제가 없도록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기계번역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제대로 사용할 수준으로는 연구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른 하나는 한글 고등 지식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한글 위키피디아(인터넷 백과사전)는 아직 부끄러운 수준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웹에서 한글로 된 고등 지식을 찾는 것 또한 쉽지 않다. 한글로 된 수준 있는 학문서도 분야별로 너무나 부족하다. 영어권에서는 중·고등학생만 되면 거의 무한정으로 고등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데 반해 한글을 통해서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원하는 고등지식을 얻기가 너무나 힘든 것이다.

    학계의 힘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이 이해(利害) 관계를 떠나 후원해 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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