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 '북한 남편'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

  • 조선닷컴

    입력 : 2010.09.26 21:11 | 수정 : 2010.09.26 21:54

    한국에 사는 빨치산 출신 여성 비전향 장기수 박선애(84)씨가 사망하자 장례위원회가 북한에 있는 비전향 장기수 출신 남편이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통일부에 요청한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장기수 및 통일운동 단체들로 구성된 박씨의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박선애씨는 25일 오전 2시30분쯤 동국대일산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박씨의 남편은 같은 비전향 장기수 출신으로 지난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후인 같은해 9월 북한으로 송환된 윤희보(93)씨다.

    장례위원회의 요청에 대해 통일부는 “협조 공문을 받아 관련 사항을 검토 중”이라며 “곧 정부 입장을 장례위원회 측에 공식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협조 요청이 이뤄진 시점이 워낙 촉박해 실현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측 인사에 대해 먼저 방남 요청을 한 경우는 거의 없고, 북측에서 방남 신청이 오면 검토하는 것이 관례였다”며 “더구나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북측에 특정 인사의 방남을 요청하기는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장례위원회 측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를 통해서도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에 남편 윤씨가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1927년 전북 임실의 한 산골마을 7남매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와 오빠를 여읜 박씨는 훗날 빨치산 활동에 빠졌다가 1951년 1월 포로수용소에 수용되면서 20여년의 감옥생활을 했다.

    사형 구형을 받았던 박씨는 감형에 이감을 거듭하다가 1965년 만기출소했다. 만기 출소 후 박씨는 같은 장기수였던 윤희보씨를 만나 968년 결혼했다.

    그러나 1975년 사회안전법이 발효되면서 남편과 함께 다시 수감돼 박씨는 1979년, 윤씨는 1989년 각각 출소했다.

    두 사람은 결혼 후 딸 하나를 낳았으나 계속된 감옥살이 때문에 직접 키우지는 못했다. 딸 고희선씨는 그 동안 이모와 이모부의 딸로 주민등록부에 등록돼 살아왔다. 그래서 성도 아버지 윤씨가 아닌 이모부의 고씨를 물려받았다.

    2000년 6.15공동선언 발표 직후인 9월 2일 비전향장기수 북송 당시 남편인 윤씨는 북으로 올라갔고 부인 박씨는 남쪽에 남았다.

    박씨는 최근 수년에 걸쳐 병에 시달려왔고 지난 8월말부터 동국대일산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가 25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장례위원회는 27일 오후 8시 동국대일산병원에서 추모제를, 28일 오전 8시 같은 장소에서 영결식을, 28일 오전 9시 임진각에서 노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박씨의 유해는 28일 오전 11시 50분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된다.

    박씨의 빈소는 박씨와 윤씨 사이에 태어난 딸 고씨가 지키고 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