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II] [우리동네 지명유래] [29] 파주 반구정(伴鷗亭)

    입력 : 2010.09.24 03:08

    6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반구정 일대 풍경 비슷… 대신 철새들이 노닐어

    자유로 당동IC에서 나와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면 임진강변에서 반구정(伴鷗亭)과 방촌영당 등 황희 정승 유적지를 볼 수 있다.

    파주시지(市誌) 등에 따르면 반구정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청백리(淸白吏)였던 황희(黃喜·1363~1452) 정승이 1449년 영의정에서 물러나 말년을 보낸 곳이다. 원래 임진강 기슭의 나루터인 낙하진(洛河津)과 가까워 낙하정(洛河亭)이라고 불렸다가 황희가 '짝 반(伴)' 자와 '갈매기 구(鷗)' 자를 써서 새로 이름을 붙였다. 풀어 쓰면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뜻이다. 반구정 주변 마을의 이름도 반구정의 이름을 딴 반구동이다.

    파주 반구정에 올라서면 임진강 강바람을 맞으며 600여년 전의 절경을 느낄 수 있다. /김신영 기자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허목(許穆)은 반구정기(伴鷗亭記)에서 반구정 주변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매일 조수(潮水)가 나가고 뭍이 드러나면 흰 갈매기들이 날아드는데 들판과 모래사장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가득하다.' 반구정이 위치한 파주시 문산읍 사목리(沙鶩里)도 강 건너 모래벌판에 찾아오는 철새가 장관을 이룬 데서 유래한다.

    파주지역문화연구소 이윤희(44) 소장은 "파주군지 등을 보면 조선시대 임진강변에는 20개가 넘는 정자가 있었다고 전한다"며 "그중 현존하는 것은 반구정과 화석정(花石亭)뿐"이라고 말했다. 임진강 상류 파평면 율곡리에 있는 화석정은 역시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율곡 이이가 제자들과 말년을 보낸 곳이다.

    600년이 지난 지금도 반구정의 풍경은 변함이 없다. 절벽 아래로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 장단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해질녘에는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절경이다. 하지만 당시에 이곳을 찾았다는 갈매기는 그 수가 훨씬 줄었다. 이 소장은 "생태계가 변하면서 갈매기 대신에 철새들이 임진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장단평야에는 해마다 수백마리의 독수리 떼가 날아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남북 분단으로 생긴 철책과 주변의 장어구이 집도 또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한국전쟁 때 불탄 반구정은 1967년 후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당시 시멘트로 지은 것을 1998년 목조건물로 다시 지었다. 반구정 바로 옆에 자리잡은 앙지대(仰止臺)는 반구정이 원래 있던 자리다. 1915년 반구정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황희의 덕을 우러르는 뜻에서 육각정을 짓고 앙지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반구정 아래에는 황희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방촌영당이 있다. 1452년(문종2년) 황희가 89세로 세상을 떠나자 1455년(세조1년) 유림들이 황희의 호를 따서 지은 사당이다. 이 건물도 한국전쟁 때 불탔다가 1962년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 1976년 경기도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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