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사다리 장기기증] 5명에게 장기기증하고 떠난 젊은 의사 음태인씨… 17년 지났지만 병원서 추모음악회

    입력 : 2010.09.14 02:59 | 수정 : 2010.09.14 04:17

    지난 6월 24일 낮 12시30분, 서울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본관 로비에서 17년전 생명을 나눠주고 떠난 젊은 의사 음태인(당시 25세)씨를 기리는 추모 음악회가 열렸다. 박성우(47)씨 등 이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고 살아난 사람 3명이 색소폰과 기타로 가요 '나 항상 그대를', 팝송 '마이웨이', 성가(聖歌)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를 연주했다.

    고인은 이 병원 인턴으로 근무하던 1993년 6월 22일 교통사고로 뇌사했다. 그는 평소 교내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불었고, 스키를 잘 타고, 술이 세고, 친구가 많았다. 소아과의사였던 아버지 음두은(75) 박사와 어머니 김양자(69)씨가 외아들의 간·신장·각막을 기증했다.

    음태인씨의 각막을 이식받은 A씨가 고인의 부모 음두은·김양자씨 부부를 찾아가‘아드님이 부지런했는지 아침마다 일찍 눈이 떠진다’고 인사한 적이 있다. 9일 경기도 용인의 실버타운에서 만난 부부는“그분들이 내 아들의 몸을 소중히 여겨줘서 우리가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사고 당일은 일요일이었다. 부부는 친구들과 부부 동반으로 등산 가려고 도시락을 싸다가 사고 소식을 들었다. 부부는 행락객으로 붐비는 고속도로를 뚫고 아들이 있는 원주의 한 종합병원에 갔다. 의료진이 아들의 뇌를 찍은 CT(컴퓨터단층촬영) 사진을 내밀었다. 음 박사는 한순간 침묵한 뒤 "우리 부자(父子)의 모교인 가톨릭의대로 옮겨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가톨릭의대 부속병원인 서울성모병원 김인철 명예교수가 장기 적출 수술을 집도했다. 김 교수는 음 박사의 대학 동기이자 고인의 스승이었다. 수술에 앞서 "미안하다"고 목이 멘 김 교수에게 음 박사가 오히려 "죽은 이는 죽지만 산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수술을 잘 해달라"고 말했다. 고인과 함께 공부한 전공의와 인턴들이 스승 뒤에 서서 수술을 참관했다.

    의연하던 음 박사는 입관을 마친 아들을 보고 무너졌다. 그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볼을 부비고 입을 맞추며 "아버지도 너랑 같이 가고 싶다"고 엉엉 울었다.

    음 박사는 2007년 은퇴했다. 지난 연말 부부는 살던 집을 정리하고 경기도 용인의 실버타운에 입주했다. 고인의 기일(忌日)과 부부의 생일이면 부부의 거처가 젊은 사람들 발길로 떠들썩해진다. 이경택(43·안과 개업의)씨 등 고인과 절친했던 7명이 때로는 번갈아, 때로는 우르르 찾아오는 까닭이다. 이경택씨는 서울성모병원 전공의 근무 시절 기증자들 각막을 거둬오는 수술을 자주 했다. 기증자들을 모신 중소병원을 찾아 새벽 어둠을 뚫고 고속도로와 국도를 달리곤 했다. 그는 "그때마다 먼저 간 친구가 떠올라 '좋은 의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태인이도 아마 천국에서 (장기기증에 대해) '잘했어'라고 말하고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고인의 간·신장·각막을 이식받은 사람 5명은 지금까지 건강하다고 병원은 밝혔다. 어머니 김씨는 유쾌하게 웃는 아들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아들은 앞차로 가고 우리는 뒷차로 가는 것일 뿐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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