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사다리 장기기증] 31년간 2020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입력 : 2010.09.13 03:01 | 수정 : 2010.09.14 07:39

    [생명의 사다리 장기기증] [1]장기기증자 2000명 돌파
    1979년 국내 첫 수술 한세대만에 본궤도 올라
    "장기 기증하는 사람들 생명의 영웅으로 존중해야"

    1979년 1월 13일, 서울 행당동 한양대병원에서 외과·내과·비뇨기과·신경외과 의사로 구성된 수술팀이 50대 남성 뇌사자의 몸에서 신장을 거둬 40대 남성 말기 신부전증 환자의 몸에 이식했다. 국내 첫 뇌사자 장기(臟器)이식 수술이었다. 장기기증이나 이식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법 제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대였다.

    그 후 한 세대가 흐른 10일 낮 12시 20분, 삼성서울병원 수술팀이 32세 남성 뇌사자 A씨의 몸에서 간·심장과 신장 2개를 거뒀다. 간과 심장은 이식받을 환자가 대기 중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급송됐다. 신장 하나는 삼성서울병원에 남고, 다른 하나는 강남구 서울의료원에서 기다리던 환자에게 이식됐다. A씨의 유족이 흐느끼며 고인을 입관하는 동안, A씨로부터 장기를 나눠 받은 4명이 무균실(無菌室)에서 눈을 떴다.

    우리나라에서 뇌사자 장기이식이 시작된 지 한 세대 만에 생명을 나눠주고 떠난 뇌사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섰다. 한국장기기증원(KODA)은 1979년 국내 첫 뇌사자 장기기증 이후 지난 10일 영면한 A씨까지 총 2020명의 뇌사자가 장기를 기증했다고 밝혔다.

    뇌사자 장기기증은 2000년대 초반까지 부진하다가, 2008년 권투선수 고(故) 최요삼씨의 장기기증 이후 처음으로 200명대로 올라섰다. 기증원은 올 연말에는 처음으로 연간 기증자가 3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1988년 국내 첫 뇌사자 간 이식수술을 성공시킨 서울대병원 김수태(81) 명예교수는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장기기증이 본궤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여덟명 살리고… 10년 전 8명에게 생명을 주고 떠난 강석민(당시 16세)군은 사고 직전 아버지 강호 목사에게“과학자가 되는게 좋을까, 아빠처럼 목사님이 되는 게 좋을까”하고 물었다. 장기 기증을 결정한 뒤 망연히 앉아 있는 강 목사에게 인체조직은행직원이 다가와“피부와 뼈도 기증하시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강 목사는 한순간 목이 멨지만“화상 환자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데 기증자가 좀처럼 없다”는 간곡한 말에“가져 가시라”고 했다. 그는“깊이 생각하면 기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아들을 보내면서 자신의 시신과 장기도 모두 기증하기로 서약했다. 사진은 중3 때 경포대에 가족여행 간 강군. /강석민군 유족 제공
    2000년 3월 24일 새벽 다발성 뇌출혈로 쓰러진 강석민(당시 16세)군은 8명을 살리고 떠났다. 서울 보성고 신입생이던 강군은 전날 밤 중1 누이동생과 떡볶이를 나눠 먹으며 투닥거리다 잠들었다. 소년은 이튿날 새벽 6시쯤 "엄마, 머리 아파"라는 말을 내뱉고 화장실에서 푹 쓰러졌다. 뇌출혈이었다.

    아버지 강호(55) 목사는 부인(53)에게 "석민이가 다 살지 못한 나머지 인생을 다른 사람들이 이어서 살게 하자"고 말했다. 사흘 뒤 오후 7시 친척 10여명이 병상 앞에 모였다. 강 목사가 기도했다. "우리에게 주신 선물 강석민, 영혼을 먼저 올려 보냅니다." 이날 밤 강군의 장기가 적출됐다.

    지난 7일 서울 동대문구 해성국제컨벤션고 2학년 1반 교실에서 만난 강 목사는 학생들에게 "내 아들의 장기를 받은 분들이 누구인지 나는 모르지만 그분들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고 했다. 이 학교 교목(校牧)을 맡은 강 목사는 아들을 보낸 뒤 수업과 예배를 통해 꾸준히 장기기증을 교육하고 있다.

    모든 뇌사자 유족이 강 목사처럼 의연하지는 않았다. 한 유족은 "친척들이 '곱게 보내주지 않고 (고인의 몸에) 칼을 댔다'고 흉을 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한국장기기증원 김선희 사무총장은 "장기기증은 '명예로운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며 "기증자 빈소에 화환을 보내면 유족 절반이 '남들이 알까 봐 못 받는다'고 돌려보낸다"고 했다.

    1979년, 1호 장기기증자였던 50대(당시) 남성 뇌사자의 부인은 "남편이 평소 '가진 건 없어도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기증을 승낙했다. 당시 장기이식 수술을 집도했던 곽진영(71) 한양대병원 명예교수는 "뇌사가 뭔지, 장기기증이 뭔지 의사들도 캄캄하던 시절, 장기이식 말고는 희망이 없는 말기 환자들을 보고 (법 위반으로 걸려) 감옥 갈 각오를 하고 수술대에 섰다"고 했다.

    곽 교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생명을 나누고 가는 것은 최고로 아름다운 행위"라며 "기증자들을 '생명의 영웅'으로 존중할 때 국민 모두에게 장기기증의 혜택이 돌아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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