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러시아가 무슨 '조사'를 했나

    입력 : 2010.09.09 23:01 | 수정 : 2010.09.10 01:54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조사단 3명이 지난 5월 31일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러시아 해군사령부 수중무기체계국장 이고리 이바노비치 대령을 단장으로 한 이들은 6월 7일까지 평택 2함대에 전시된 천안함 등을 둘러보고, 우리측 조사단과 세 차례에 걸쳐 합동 토의를 했다. 러시아 조사단은 천안함 침몰현장에서 회수된 결정적인 증거물인 어뢰 추진체에 대해 두 차례 조사를 했고, 지난 2003년 포항 앞바다에서 회수된 북한의 실험용 어뢰를 살펴보기도 했다.

    이들은 국내외 언론과의 접촉을 피한 채 조사활동을 마치고 6월 7일 '조용히' 러시아로 귀국했다. 이 조사단이 러시아로 돌아간 뒤 일부 국내 언론에서 러시아 조사단이 기뢰가 그물에 끌려 올라와 폭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확률이 '0'에 가까운 추측이었지만 '러시아 소동'은 끝나지 않았다. 햇볕정책 신봉자인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최근 외신 기고 등을 통해 "러시아 친구에게 들었다"면서 "한국 정부가 러시아 조사단의 증거 자료 접근을 막았다" "러시아 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이명박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4일 러시아 언론들은 러시아 전문가들의 조사결과가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에 보고됐으며 천안함이 외부 충격으로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 소동을 지켜보면서 어이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천안함 국제조사단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호주·영국·스웨덴 등 4개국 전문가 24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가능한 조사와 실험을 다 했다. 그 결과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스웨덴도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조사결과에 동의했다. 그 방대한 조사와, 3명이 와서 일주일간 그야말로 '둘러본' 러시아측 조사를 같은 비중으로 취급한다는 자체가 난센스다. 엄밀히 말하면 러시아의 활동은 '조사'라고 할 수 없으며 '참관'이라고 불러야 옳다.

    정치적으로도 러시아는 '천안함이 북한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할 수 없는 나라다. 러시아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을 이용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기본 전략을 갖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해도 러시아와 북한 관계는 한·러 관계와는 차원이 다르다. 러시아측 '조사결과'라는 것은 처음부터 그 내용이 무엇이든 정치적인 것일 뿐, 결코 사실적인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 조사단을 초청한 것 자체가 단견이었다.

    북한의 공격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 러시아 '조사결과'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가 애매한 내용을 내놓으면 이걸 들고 또다시 '의혹 잔치'를 벌일 것이다. 대학교수 한 명이 실험실에서 조건도 맞지 않는 실험으로 내놓은 '의혹'도 인터넷에선 '진실'로 돌아다니는 판이다. 젊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안 믿는다"고 해야 잘난 것인 양하는 풍조도 만연해 있다. 러시아가 먹이를 던져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범인을 눈앞에 두고 벌어지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작지만 잦은 거짓말과 뒷북 해명으로 국민의 큰 신뢰를 잃어버린 군 당국의 책임도 크다.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군 지휘관들도 남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미처 몰랐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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