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학교] "학원은 수준별 수업… 학교는 구분없이 모아놓으니 잘 수밖에"

    입력 : 2010.09.09 03:03 | 수정 : 2010.09.09 10:26

    "학원강사는 매달 평가받는데
    교직 사회는 경쟁하지 않아…
    유능한 교사들도 나태해져"
    "학원선 반편성때 학생 평가…
    학생은 듣고싶은 강사 선택"

    경기도의 한 중·고생 입시 A학원은 올 초 강사 교무실을 없앴다. 강사들이 교무실에 모여 수업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잡담만 했기 때문이다. 학원은 교무실을 학생 자습실로 바꿔 강사들이 이 자습실에서 수업 연구를 하도록 했다. 강사들도 학생들 자리 사이사이에 배치했다. 이 학원 강사 정모(29)씨는 "아이들이 자기를 가르쳐주는 강사가 옆에 있으니 잠자는 건 꿈도 못 꾼다"며 "강사들도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교재 연구에 충실해지고, 학생들도 신경 써주는 강사 모습을 보고 수업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B학원을 운영하는 박모(49)씨는 C외고 교사들을 학원에 초청해 학생 교수법을 배우도록 했다가 크게 실망했다. 작년까지 3년간 C외고에 강사를 보내 유학반 방과 후 수업을 맡았던 이 학원이 올해는 방과 후 수업을 계속 맡을 수 없어 "학교 교사들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학원에 와서 아이들 가르치는 걸 배워가시라"고 했던 것이다. 박씨는 "교사 몇분이 학원에 왔는데 학원 교수법을 심드렁한 표정으로 몇번 듣더니 금방 포기하고 돌아갔다"며 "학교에서 아이들이 왜 자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했다.

    박씨는 "교사들은 학력도 우수하고 아는 건 많은데 수업은 잘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외고 수업을 들어봤는데 학원에서 스카우트돼 학교로 옮긴 선생님들조차 수업이 엉망이었다"며 "학원에서 잘 가르쳤던 사람들이 변하는 걸 보니 아마 학교는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자는 분위기가 없는 모양"이라고 했다. 박씨는 "우리 학원은 한 달에 한 번씩 강사들끼리 서로 평가하도록 하고, 학습자료를 모아놓고 강사들이 대화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입시학원에서 학교 수업을 마친 고등학생들이 수학 강의를 듣고 있다. 학원강사들은 “사교육이 공교육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공교육이 부실해 사교육이 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준용 기자 jahny@chosun.com
    학원 강사들은 사교육이 공교육을 앞서는 강점은 강사와 학생 사이의 원활한 소통과 상호평가라고 입을 모은다. 학원에서는 시험을 치러 수준별 반편성을 하면서 학생들을 평가하고, 학생은 자기가 수업을 듣고 싶은 선생님을 선택하기 때문에 학생은 학생대로, 강사는 강사대로 끊임없이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학원 강사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내 수업이 지루해서 아이들로부터 버림받지는 않을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극이 학생들로부터 인정받는 교육을 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 D학원에서 수리영역을 가르치는 정모(34)씨는 수학에 나오는 딱딱한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라디오 DJ 말투를 흉내 내며 녹음한 MP3파일 강의를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정씨는 "학생들이 가진 수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차원"이라며 "강의 중 1인 2역으로 스스로 인터뷰도 하고 학생과의 '전화데이트'도 하는 등 일부러 재미있게 녹음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수업 때 어려운 수학 공식을 실생활에 비유해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달 수학능력시험을 100일 앞두고서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위해 흥겨운 댄스곡에 맞춰 응원복을 입고 춤추는 동영상을 찍어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정씨는 "이런 모습들이 학생들 성적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이 교실 앞에만 서 있다가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면 감동하고 공부할 힘을 더 낸다"고 말했다.

    외국어 영역 스타 강사인 E학원 김모(43) 대표는 영어 독해를 할 때 해석만 하는 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시대적 배경 등을 함께 설명해주면서 학생들의 관심을 이끈다. 학생들이 흥미를 느껴야 공부에 열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학생들이 수업을 지루해할까 봐 비틀스의 노래를 연습해 부르거나 유명 연설문을 활용해 강의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학원강사들은 연말에 수강생들을 초청해 자신의 돈으로 마련한 장학금을 주거나 미니콘서트 등 이벤트를 열어 학생들과 가까워진다. 경기도에서 F학원을 운영하는 학원강사 박모(30)씨는 "학원을 마치면 학부모에게 '학생 귀가합니다'라는 문자를 꼬박꼬박 보내준다"며 "학생들과 친해지려고 학생들에게 보내는 문자메시지에 쓰는 비용만 매달 20만~30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학교 교사보다 학원 강사의 체벌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도 강사들이 '고객'인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친근감을 쌓아 학생들이 믿고 따르기 때문이다. G학원강사 한모(26)씨는 "체벌은 가하는 사람과 당하는 학생 사이에 서로를 믿는 유대감이 형성돼 있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그게 없는 것 같다"며 "얼굴 맞대고 얘기 한번 제대로 안 해본 선생님이 자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때리니까 교사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교사들이 인성 교육을 강조하면서 정작 학생들에게 절박한 '입시'준비는 소홀히 해 아이들로부터 외면받는 것도 문제점이라고 학원강사들은 지적했다. 교사들이 입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불안해진 학생들이 학원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학원 강사들은 교직 사회에도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남 밀양에서 H학원을 운영하는 구모(55)씨는 "학교 교사는 자격과 능력이 충분한데 대부분 큰 탈 없이 승진 잘하고 편하게 생활하기 때문에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겠다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라며 "학원은 수강생 수에 따라 강사 연봉이 달라지듯 학교에서도 고학년을 맡을수록 연봉을 올려준다면 태도가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구씨는 "그래야 교사들도 더 잘 가르치는 교사를 따라 배우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분위기가 될 것"이라며 "교육자의 권위는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학생들로부터 인정받을 때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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