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데스크] 뤼순 203고지서 본 것

    입력 : 2010.08.29 23:21

    김기철 문화부 차장대우
    "한국 손님 열 팀 중 대여섯 팀은 이곳은 우리와 관련 있는 곳도 아닌데 왜 데려오느냐며 다른 데로 가자고 하세요." 작년 11월 러·일전쟁 격전지였던 중국 랴오닝(遼寧)성 뤼순(旅順) 203고지에서 만난 20대 조선족 가이드는 답답해했다.

    뤼순항이 내려다보이는 203고지는 일본러시아와 한반도 지배권을 놓고 겨룬 러·일전쟁의 최대 격전지이다. 1904년 여름부터 노기 마레스케 대장이 지휘하는 일본 3군은 러시아 함대 본거지였던 뤼순항을 포위, 6만명 가까운 사상자를 낸 끝에 이듬해 1월 이곳을 점령했다. 노기 대장 아들도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203고지엔 '노기 대장 아들이 전사한 곳'이라는 기념비까지 서 있다.

    뤼순에 이어 봉천(지금의 선양) 전투와 쓰시마 해전에서 승리한 일본은 그해 9월 5일 미국 포츠머스에서 조선을 '지도, 보호 및 감리할 권리'를 러시아로부터 인정받았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삼킬 수 있도록 '허가증'을 내준 조약이었다. 그런데 한국 관광객들은 나라를 빼앗긴 국치(國恥)로 이어진 현장까지 가서 관심 없다며 발길을 돌린다는 것이다.

    한국이 100년 전 나라를 잃은 것은 일본의 침략 탓이다. 그러나 최근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1905년 태프트·가쓰라 밀약,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의 현장을 취재하면서 느낀 사실은, 한·일 강제병합이 일본만의 힘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양해를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극도로 무기력하며 최소한의 저항을 할 능력도 없다. 이름뿐인 요새·군함·군대를 보유하고 있어, 전혀 고려할 가치도 없다. 한국은 공격을 자초한다.' 포츠머스 조약을 중재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내린 평가다. 1894년부터 1897년까지 한국을 네 차례나 여행한 영국인 이사벨라 비숍은 관료 계층을 "나라의 월급을 축내고 뇌물을 받는 일 외에는 하는 일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며 '기생충'이라고 지목했다. 평민 계급의 존재 이유는 '피를 빨아 먹는 흡혈귀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국제사회가 일본의 조선 지배를 눈감아준 데는 조선 전체의 무능과 부패 탓이 컸다.

    독립을 유지할 힘을 스스로 키우지 않고 열강에 기대려고만 했던 고종의 '세력균형 외교'도 비웃음과 불신만 샀을 뿐이다. 영국 기자 매킨지가 러·일전쟁 직전인 1904년 2월 고종 측근 이용익과 인터뷰를 하면서 "한국이 스스로를 구하려면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하자, 이용익은 "한국은 안전하다. 한국의 독립은 미국과 유럽에 의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동아시아의 시계가 긴박하게 돌아가던 시절, 국제질서를 잘못 이해하고 외세에 의존한 대가로 받은 청구서는 '망국(亡國)'이었다.

    100년 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향후 한국의 통일과 발전이 국제사회의 이해와 협력 아래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100년 전 일본은 이 점에서 우리를 훨씬 앞질렀다. 국제사회의 신뢰는 쉽게 얻을 수 없다. 제 나라가 망한 현장에 와서도 다른 데 가서 놀고 먹고 싶은 생각이 더 큰 사람들의 나라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100년 전 우리 조상도 그래서 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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