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떠나고 싶다는 나라에 시집온 몽골 주부입니다

  • 차강 앙흐토야 / 다문화 어린이 도서관 '모두' 직원
  • 이철원

    입력 : 2010.08.25 23:33

    "서울살이 8년째 잘사는 한국이 왜 이민 오고 싶은 나라 50위일까
    이민이 자유화되면 인구가 몇백만이나 줄어들 나라일까
    한국에 와서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게 뭔지를 알았다
    왕따가 있는 나라 사람들 마음속에 수많은 계단이 있는 나라
    못사는 나라 사람은 모두 아래 계단으로 보는 나라
    그 마음의 계단 때문 아닐까"

    차강 앙흐토야
    내 고향은 몽골 남부 바얀홍고르. 초원 가운데 자리 잡은 도시다. 대학 졸업 후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오빠 집에 살다가 아는 사람 소개로 한국 남자와 만났다. 아이처럼 착한 남자였다. 나이는 나보다 일곱 살 많고, 서울에선 택시를 몰고, 신붓감을 찾아 몽골에 왔다고 했다.

    아버지가 말렸다. 어머니는 "가라, 그 길이 네 길이라면" 했다. 어머니와 떨어지는 게 슬펐지만 이 남자와 헤어지기는 싫었다. 이렇게 착한 남자와 함께라면 먼 나라에 가도 행복할 것 같았다. 더구나 한국은 잘사는 나라라고들 했다.

    서울살이 8년째. 쉽지 않았다. 서울에 오자마자 주위 사람들이 "한국 학교에는 '왕따'라는 게 있다"고 했다. 놀라고 걱정됐다. 몽골 학교엔 '왕따'가 없다. "엄마가 집에서 몽골말을 쓰면 아이가 한국말과 몽골말을 둘 다 못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결혼 첫해에 아들을 낳았다. 혼자 있을 때도 나는 필사적으로 아기에게 한국말을 썼다. 힘들었다. 답답했다. 아이를 야단칠 때도, 칭찬할 때도 '벽'을 느꼈다.

    '벽'은 집 밖에도 많았다. 서울에서는 아이들끼리 놀이터에서 만나도 "너 몇 살이니?"부터 묻는다. 몽골에선 위아래로 다섯살까지는 스스럼없이 지낸다. 나는 땅이 넓고 사람이 적은 나라에서 사람이 사람을 무시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고 컸다. 한국에 와서 무시하는 게 뭔지 알았다. 무시당하는 대상이 바로 나였다.

    하루는 친한 몽골인 주부들과 아이를 데리고 택시를 탔다. 우리가 몽골말을 주고받자 기사의 표정이 표나게 달라졌다. 목적지 근처에서 우리가 길을 정확히 몰라 "조금만 더 가달라"고 하자, 그는 반말로 "너희가 여기라고 했잖아" 했다. 우리는 거기서 내렸다.

    이런 일은 시장에서 옷 살 때, 주민센터에서 서류 뗄 때, 아이 데리고 나들이 갈 때 수없이 반복된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한국사람인 줄 알고 자연스럽게 대하던 사람들이 내가 입을 열면 '어, 너 뭐야?' 하는 얼굴이 된다.

    처음엔 내가 뭔가 잘못했나 싶었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 게 잘못인 걸까. 한국인은 외국인을 차별하는 게 아니라 '못사는 나라 사람'을 차별한다. 같은 외국인이라도 미국인은 잘해주면서 필리핀·베트남·몽골·러시아에서 왔다고 하면 '못사는 나라'로 뭉뚱그려 얕잡아본다. 나는 몽골의 최고 명문인 몽골국립대를 졸업했지만, 한국 사람들은 내가 한국말을 못하면 한국말뿐 아니라 다른 것도 다 모르는 줄 알 때가 많다.

    "한국에 시집오니 좋으냐"는 질문도 자주 받았다. "못사는 나라 사람이 잘사는 나라에 오니 좋으냐"는 의미로 들릴 때가 많았다. 대답하기 싫었다. 나는 몽골이 싫어서 한국에 오지 않았다. 아무리 남편을 사랑해도 누가 내게 "한국이 좋으냐, 몽골이 좋으냐" 물으면 당연히 몽골이 좋다. 고향이니까. 내 나라니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었지만 나는 몽골 국적을 유지했다. 국적까지 버리면 내겐 남는 게 없을 것 같았다. 한국에 뿌리내리기 위해 나는 이미 많은 것을 버려야 했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 부모·형제와 정답게 부대끼는 것, 내가 자란 방식대로 느긋하고 활달하게 사는 것을 다 포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괘념치 말자. 만족하면 된다"고 깨달았다. 몽골에서 배운 대로 살면 된다. 몽골에서 나는 나 자신에 만족했다. 내가 나와 남을 비교한 건 한국에 오면서부터다. 한때 빨리 많이 돈을 모아서 한국 사람보다 더 잘살고 싶었다. 살림도, 육아도 최고가 되고 싶었다. 욕심이 나를 힘들게 했다. 욕심을 버리자 후련해졌다. 몽골에 살 때처럼 서울에서도 지금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편안해진다.

    그러자 한국의 다른 모습이 보였다. 한국인은 무엇보다 부지런하다. 뭐든지 열심히 한다. 심지어 밥도 빨리 먹는다. 처음 왔을 땐 '인간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도 있다니!' 싶었다. 한국에서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살게 된다.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다는 걸 모르고, 그저 '한국'이라는 이름만 알고 살았을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몽골말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네 살 때 처음으로 나를 '에자'(엄마)라고 불렀다. 당황했다. 가슴이 뜨거웠다. '이게 바로 엄마라고 불리는 느낌이구나' 싶었다. 아이가 한국말로 '엄마'라고 부를 때는 한 번도 못 느낀 감정이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임애'(할머니), '우워'(할아버지)라고 했을 때 수화기 너머 친정 부모님은 목이 메셨다.

    나는 아들을 데리고 서울 이문동에 있는 다문화 어린이 도서관 '모두'를 찾았다. 몽골·베트남·필리핀·러시아 등 10여개 국가 동화책을 갖춘 곳이다. 아들은 책을 읽고 나는 자원봉사를 했다. 이달 초 아예 직원으로 채용돼 월급도 70만원씩 받게 됐다.

    이런 도서관이 생긴 걸 보면 한국도 참 좋아졌다.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 엊그제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148개국 성인 35만명을 대상으로 '이민 가고 싶은 나라'를 조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1등은 싱가포르, 2등은 뉴질랜드, 한국은 50등이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삶의 터전을 바꿀 수 있다면 싱가포르와 뉴질랜드는 지금보다 인구가 두배쯤 늘고, 한국은 8% 줄어든다고 했다.

    한국은 잘사는 나라인데, 어째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보다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걸까. 한국 사람들은 '층계'를 좋아하는 것 같다. 저마다 마음속에 무수한 층계를 만들고 '못사는 나라' 사람은 무조건 자기보다 낮은 계단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이민자를 위한 제도를 갖추는 것 못지않게 마음의 층계가 사라져야 '이민 가고 싶은 나라'가 된다. 국적을 따지기에 앞서 '인간 대 인간'으로 외국인을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차강 앙흐토야씨가 구술한 것을 사회정책부 김수혜 기자가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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