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8월 27일, 세계의 눈은 대구로 쏠린다. 지구촌 70억명이 시청할 세계육상경기선수권대회가 대구 스타디움에서 개막해 9월 4일까지 9일간의 열전에 돌입하는 것이다.
210여개국, 선수 2000여명이 출전하는 세계육상경기선수권은 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어 3대 스포츠 이벤트로 꼽힌다. 이제 남은 시간은 겨우 1년. 한국 육상에는 변화의 기운이 감돌고 있지만 여전히 실제적인 성과는 미흡하다. 과연 한국은 세계선수권 47개 종목에 걸린 141개의 금·은·동메달 중에서 하나라도 따낼 수 있을까.
◆개혁 드라이브 걸었지만…
2007년 3월 케냐 몸바사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했을 때 곧바로 경기력 향상 작업에 나섰다면 지금쯤 상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육상계는 "세계 수준의 육상 경기를 즐기면 된다. 반드시 한국이 성적을 올려야 하는 건 아니다"라는 해괴한 패배주의로 시간을 낭비했다.
한국 육상계는 작년 2월 삼성전자 북미총괄사장 출신 오동진 회장이 취임해 "이대론 공멸(共滅)한다"며 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연맹은 선수 해외 파견 작업을 시작했고 외국인 코치도 5명으로 늘렸다. 특히 대구 선수권과 2012년 런던올림픽 육상의 금·은·동메달에 각각 10억, 5억, 2억의 파격적인 포상금도 약속했다. 지난 1979년 작성된 100m 한국기록(10초34·서말구) 경신에는 1억원을 별도로 내걸었고, 지난 6월에는 김국영이 100m를 10초23에 뛰어 육상계의 30년 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육상은 세계와 비교가 안 된다. 김국영의 기록으론 세계선수권 예선 1회전 통과도 쉽지 않다. 육상계가 경보, 장대높이뛰기, 멀리뛰기, 세단뛰기, 창던지기 등 '세계선수권 틈새시장'이라며 집중 투자한 종목에서도 별 성과가 없다. 여자 경보는 2008년 10월 이후 기록 단축이 끊겼다. 한동안 반짝했던 여자 장대높이뛰기도 임은지의 한국 기록이 4m35에서 멈춘 상태다. 지난해 베를린 세계선수권 동메달 기록(4m65·첼시 존슨)에 30㎝나 뒤진다. 남자 세단뛰기 올 시즌 최고기록은 16m87(김덕현)로, 베를린 동메달 기록(17m36·알렉시스 코펠로)에 49㎝가 떨어진다.
메달권에 근접한 종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재명의 남자 창던지기 한국기록(83m99)은 베를린 대회였다면 동메달에 해당한다. 여자 멀리뛰기 정순옥의 한국기록(6m76)도 베를린 동메달 기록(6m80)과 엇비슷하다. 이들이 내년 대구 대회 때도 이런 기록을 낸다면 한국은 '개최국 노메달의 치욕'을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기록은 정체 상태이다. 국제 경쟁을 기피하는 육상계의 태도는 여전히 문제다. 김복주 한국체육대 교수는 "육상을 하면서 '월급쟁이 선수'에 만족하는 병폐를 뿌리 뽑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위와 연맹 불협화음 극복해야
세계선수권 유치 후 대구 조직위원회와 대한육상경기연맹 사이의 불협화음도 극복해야 한다. 조직위는 "경기력 향상은 연맹 책임"이라며 뒷짐을 졌고, 연맹은 "대회와 관련해 우리와 상의도 않는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러는 동안 "육상의 박태환, 육상의 김연아를 만들겠다"(조해녕 대구 조직위원장)는 말은 공수표가 될 위기다. 결국 양 단체가 합심해야 세계선수권에서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에 너무 스타가 없기 때문에 과연 내년에 6만6000여 관중석을 채울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 걱정도 있다. 축제 분위기인 역대 세계선수권과 달리 텅 빈 경기장에서 대회가 치러질 경우 "대회를 뭣 하러 유치했느냐"는 국제 육상계의 맹비난이 예상된다.
◆잘 달리던 마라톤도 '역주행', 스피드 경쟁 뒤져… 지영준 홀로 고군분투
손기정·황영조·이봉주로 이어진 전통의 한국 마라톤도 악전고투하고 있다. 여자부는 씨가 말랐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선수가 없고, 남자부도 에이스인 지영준(29)이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영준은 지난해 4월 대구 국제마라톤에서 2시간8분30초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해 기대를 갖게 했다. 대구 스타디움에서 출발하고 끝나는 이 코스는 막판에 오르막이 2㎞나 계속되는 등 적응이 어려워 한국 선수에게 유리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측 희망과 달리 내년 세계선수권 코스는 시내 중심부로 변경됐다.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에서 시작해 평탄한 도심을 2바퀴 도는 '도돌이표 코스'가 채택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선수 프리미엄'도 상당부분 사라지고 말았다.
더구나 최근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마라톤 대회는 순위 다툼이 아니라 초반부터 빠르게 질주하는 스피드 경쟁 양상을 띠고 있어 한국에 부담스럽다. '중장거리 왕국' 아프리카 선수들보다 한국 선수들의 스피드가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윤여춘 마라톤 해설위원은 "여자 마라톤은 초반부터 정상권 선수들의 페이스를 따라갈 경우 아예 완주가 어려운 수준이다. 남자도 스피드 경쟁에서 아프리카에 점점 밀리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육상계는 상위 3명의 기록을 합산해 시상하는 '마라톤 남녀 단체전' 메달에 희망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마라톤 단체전은 정식 종목이 아니라 번외 경기이다. 육상계는 "번외 경기지만 시상식은 똑같이 한다. 스타디움에서 태극기를 올리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번외 경기에 매달리는 현실이 한국 마라톤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구 대회 준비상황
主경기장 60%·선수촌 55% 공정… '내년 7월까지 완료' 이상 없을 듯
이제 367일만 있으면 전 세계 2000여명의 건각(健脚)들이 대구로 몰려든다. 세계육상경기선수권대회라는 큰 '잔치'를 1년여 앞둔 현 시점에서 준비 상황은 어느 정도일까.
선수들이 뜨거운 기록 경쟁을 펼칠 대구 스타디움은 개·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60% 정도 공정을 마쳤으며 총 3160억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돼 내년 7월에 공사를 모두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최근 중점적으로 진행되는 트랙 공사는 내년 1월에 완료될 예정이다. 조직위는 내년 대회를 위해 기존 벽돌색 폴리우레탄 트랙을 걷어내고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에 쓰였던 파란색 탄성고무시트 트랙을 깔고 있다. 탄성고무시트 트랙은 폴리우레탄보다 딱딱해 단거리 기록을 올리는 데에 유리하다. 파란색이 세련된 느낌이 들어 사진 효과가 크고 선수들의 선호도도 높다. 조직위는 "트랙 공사가 마무리되면 스타디움 내 전기·통신시설, 보조 경기장, 식당 같은 부대시설 공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6만6000여 관람석과 18개의 대형 스피커가 동원되는 음향 시설, 기존보다 2배 이상 커지고 4배 이상 밝아졌다는 주전광판(가로 24.2m, 세로 9.6m)과 보조 전광판(가로 17m, 세로 9.6m)은 이미 설치가 끝났다. 스타디움 주변 조경공사도 마무리됐다.
대구 스타디움에서 5㎞ 떨어진 율하동에 만들어지는 선수촌의 공정률은 55%다. 완공 목표는 내년 4월이다. 123~201㎡(37~60평)짜리 아파트 528가구로, 각국 선수 및 임원진 3500여명이 대회 기간에 묵을 수 있다. 선수촌은 158㎾짜리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해 지하주차장과 단지(團地)조명을 밝히는 데 쓸 계획이다. 단지 중앙엔 작은 연못과 정자가 어우러진 한국형 정원이 꾸며질 예정이다. 조직위는 "대회가 끝나면 지역 주민에게 분양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