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명중 1학년 임경재군은 지난 8월 5일 기쁜 소식을 들었다. 열세 살 나이로 국내 최고의 영재들만 진학한다는 한국과학영재학교에 당당히 합격한 것. 혹자는 '타고난 영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소극적인 성격 탓에 학교에서 발표를 제대로 못해 무시당하고, 주의가 산만해 학원에서도 "이런 아이는 못 가르치겠다"는 말을 들었다. 임군을 영재로 '길러낸'이는 엄마 송정윤(39)씨. 송씨는 "직접 가르치면서 아이를 잘 파악하고 매일 꾸준히 공부한 것이 교육 비결"이라고 말했다.

◆엄마표 공부 시작은 하루 5장 수학문제집 풀기

부산 금명중 1학년 임경재군과 임군을 영재로 '길러낸'이는 엄마 송정윤(39)씨.

초등학교 입학 후 임군은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입학 직전에야 한글을 겨우 떼고 들어갔기에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당연히 또래보다 공부가 처질 수밖에 없었다. 수업시간에 발표도 제대로 하지 못해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도 무시당하는 일이 잦아지자 집에서도 말수가 줄고 "학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썼다. 이대로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송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 돌보는 일에 집중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자신감을 가지려면 뭔가 한 가지 잘하는 것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제가 가장 좋아했던 '수학'부터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방과 후 아이와 마주 앉아 매일 수학 문제집 두 권을 5장씩 풀었다. 처음에는 5분도 못 앉아 있었지만 점차 집중력이 좋아져 6개월이 지나자 같은 시간에 두 배의 문제를 풀게 됐다.

또 아이에게 늘 한 단계 높은 목표를 줬다. 1학년 1학기에 공부를 시작하면서 2학기 가을에 치를 사설 수학경시대회에 미리 원서를 냈다. 첫해는 경시대회 기본문제 다 풀기, 2학년에는 본선 진출하기, 3학년에는 본선 수상을 목표로 했다.

"처음에 가르칠 때는 심화문제에 손도 못 대는 아이 때문에 무척 속상했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1학년이었어도 못 풀었겠다'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뭔가를 가르치는 대신, 연습장을 두 권 놓고 문제를 같이 풀었어요. 못 풀어도 한 문장이라도 생각하고 써보라고 했죠. 아이와 제 풀이법이 다르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로 설명해 보게 했어요."

초등 3학년 때부터는 수학 답안을 서술형으로 쓰는 연습을 시켰다.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말로 설명하게 하고, 말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다음, 이를 다시 서술형 답안으로 다듬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 어려운 수학 용어나 공식을 알려주기보다 생활 속에 있는 실제 물건을 활용하거나 그림, 표 등을 사용해 가르쳤다. 송씨는 "주위 사물로 쉽고 재미있게, 천천히 배웠기 때문에 아이가 꾸준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공부하다가 궁금한 내용 연구해 자기만의 수학이론도 만들어

유아기에 책을 거의 읽지 않은 임군은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좀처럼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동화전집을 사줬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송씨는 고심 끝에 동화책 뒤에 있는 줄거리를 하루 한 편씩 소리 내 읽고 공책에 베껴 쓰게 했다. 이를 2년 동안 계속하자, 줄거리를 읽고 관심이 생긴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3~4학년에는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었다. 책을 읽은 다음 엄마와 함께 퀴즈를 풀고 책의 주제로 한 편씩 글을 썼다. 책은 물론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도 줄었다.

영어도 학원에 보내지 않고 교재와 인터넷 강의를 활용해 직접 가르쳤다. "초1부터 1년6개월 동안 학원을 보냈는데, 2학년 때 듣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학원을 끊었다"고 했다. 하루 영어 듣기 30분, 읽기 30분씩 꾸준히 공부하고 4학년이 됐을 때는 인터넷 강의로 문법을 가르쳤다. 일기도 영어와 국어로 번갈아 쓰게 했다. "일기에는 대개 그날의 수학공부 내용을 쓰곤 했는데 그러면서 글쓰기와 수학에 더 재미를 붙였다"고 했다.

이런 노력으로 임군은 초등 5학년 때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 부산대 영재원에 들어갔다. 당시 임군은 선행학습을 한 영재원 동기들보다 진도가 1년 이상 뒤처져 있었다.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임군은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임군은 "제가 모르는 게 더 많았지만 부끄럽거나 힘들다기보다는 얼른 집에 가서 모르는 것을 더 공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지난해에는 KMO(한국수학올림피아드) 2차 은상을 받기도 했다. 공부하다가 의문점이 생기거나 다른 풀이법이 떠오르면 수학연구노트 두 권에 연구 결과를 적었다. '임경재의 12선점 이론' 등 자기만의 이론도 만들었다. 이런 결과물은 고스란히 한국과학영재학교 입학사정관 전형에 반영됐다.

수학자가 꿈인 임군은 한국과학영재학교에 다닐 날을 고대하고 있다. 임군은 "영재학교에서는 주제를 정해 팀별로 연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영재학교에 진학하면 제가 만든 '12선점 정리'를 좀 더 확장하는 등 궁금했던 수학이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