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쪽방촌은 자녀·부모 암묵적 합의하에 만든 현대판 고려장"

  • 조선닷컴

    입력 : 2010.08.20 16:52 | 수정 : 2010.08.20 17:34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앞길 쪽방촌. /출처=월간조선
    해가 중천인데 방이 어둡다. 팔다리를 따로 놀려야 겨우 움직일 만큼 비좁은 방, 몸은 점점 더 굳어 간다. 합판 한 장을 사이에 둔 옆방에서 기침 소리가 들린다. 여름엔 가만히 있어도 등이 땀에 젖고, 겨울에는 발가락이 얼 정도로 춥다. 마치 상자 속에 누워 있는 듯 숨이 콱콱 막히는 이곳, 수많은 노인들이 마지막 거처(居處)로 삼고 있는 곳이다.

    월간조선 9월호는 지난 6월 초부터 두 달 동안 서울 시내 여러 쪽방촌을 돌아봤다. 배가 산처럼 부른 젊은 미혼모가 7살짜리 딸과 11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사는 방도 있었고, 알코올 중독에 폭력이 심했던 전 남편을 피해 노숙하다가 홀로 아이를 낳은 여자도 있었다.

    서울시 자활지원과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서울 시내 쪽방은 종로구 돈의동·창신동, 중구 남대문로5가, 용산구 동자동·갈월동, 영등포구 영등포1동·2동·문래1동 총 9개 지역에 3512개가 있다. 3228명의 쪽방 주민은 대부분 40대 이상으로 혼자 산다. 기초생활수급자는 1302명, 장애인은 602명이다.

    ◆ '하루 33만원' 호텔 옆 '하루 7000원' 쪽방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남대문로다.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과 CJ, STX 등 호텔과 대기업 사옥이 빽빽한 남대문로5가에 2.31㎡(0.7평) 쪽방촌(村)이 형성돼 있다. 회현동 남대문 경찰서 뒤부터 연세빌딩 뒤쪽까지 닭장처럼 다닥다닥한 쪽방이 1000개가 넘는다.

    하룻밤 묵는 데 33만~455만원이라는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앞 거리에 가본 7월, 하루 숙박비 7000원(월 임대료가 21만원 수준)인 ‘쪽방’ 주민들이 모여 부채질을 해대고 있었다. 목에 대기업 사원증을 걸고, 테이크아웃 아이스커피를 손에 든 행인들은 주민들을 멀리 돌아 걸어갔다. 쪽방촌 주민과 행인들 사이에 범접할 수 없는 ‘빈부(貧富)의 경계’가 명백했다.

    남대문 쪽방 거주자 739명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279명,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51명이다. 자녀가 어느 정도의 수입이 있어 수급자가 되지 못한 노인들은 허드렛일을 해서 먹고 산다. 영양 부족, 알코올 중독, 결핵 등을 앓는 사람이 많다. 지난 1월에는 이 동네 수급자 최모(51)씨가 근로 중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 서울 중구보건소는 2004년부터 ‘간호사 1인 1동제’를 실시했다. 14명의 간호사가 매일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가정을 방문해 무료로 건강을 관리해 주는 제도다. 20년 동안 간호사를 하다 2005년 퇴직한 박한우(62) 간호사가 지난해부터 남대문 쪽방 지역의 방문간호를 맡고 있다. 박 간호사는 “면접 때 열심히 일하겠다던 간호사도 쪽방에 한번 가 보고는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며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간호사들이 주로 쪽방을 맡는다”고 했다.

    박한우(62) 간호사가 남대문로5가 쪽방촌에서 이모씨의 혈압을 재고 있다. 하루 40알의 약을 먹으며 연명하는 이씨는 “6·25 때 죽었으면 명예라도 남았을 것”이라며 한탄하고 있다. / 출처=월간조선
    ◆ 쪽방에서 만난 84세 6·25 참전용사

    이모(84)씨는 2.31㎡(0.7평) 방에 산다. 얇은 합판 수납장 위 텔레비전, 버너, 간이 냉장고, 전화기, 요강이 눈에 들어왔다. 박 간호사가 이씨의 혈당, 혈압을 체크할 동안 이씨는 그동안 쌓아 둔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이씨는 “박 간호사가 유일한 손님이자, 친구이자, 딸”이라며 “작년에 중풍이 재발하면서 이 방에서 죽다 살아났다”고 했다. 이씨의 일과는 통장 집에 배달되는 신문을 가져다 보고, TV 뉴스를 시청하는게 전부다. 하루 한 번 배달되는 무료 도시락을 세 끼로 나눠 먹는다.

    “죽을 때가 다 됐는지, 요즘 6·25때 생각이 자꾸 납니다. 그 때 죽었더라면 명예라도 남았을 텐데,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제가 그저 한스럽지요.”

    1949년, 유난히 키가 크고 총기(聰氣)있었던 22살의 이씨는 10월 사관학교에 입학해 1950년 4월25일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 두 달 만에 6·25가 터졌다. 최전선에 투입돼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가면서 선후배와 전우가 연달아 죽어 나갔다. 60년이 흘렀지만, 그는 충격과 슬픔이 생생하다고 한다.

    이씨는 “조국을 위해 내 청춘, 가족, 친구들을 다 바쳤는데 남은 건 쪽방 한편과 명예수당 9만원뿐”이라고 했다.

    2009년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보훈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소득이 있는 참전자는 9777명(6.3%)이며 이들의 월평균 수입은 49만원으로 최저생계비(1인 가구 월 50만4344원)에 미치지 못했다.

    ◆"쪽방촌은 자녀·부모 암묵적 합의하에 만들어진 현대판 고려장"

    기자는 인근 쪽방촌을 돌며 언어장애 딸을 홀로 키우는 50대 아버지, 며느리가 집을 나간 후 홀로 손녀를 키우는 70대 할머니, 전자제품 도매업체를 운영하다 IMF의 늪에 빠져 부도가 난 70대 남성 등을 만날 수 있었다.

    1.5평 쪽방에 혼자 사는 허효순(75)씨는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고 있지만 용돈을 받지 않는다. 자녀가 먹고 살만큼 돈을 벌어 기초생활수급자 혜택도 받지 못한다. 작년부터 경로당에서 2시간씩 부엌일을 하고 한 달에 25만원을 받아 생활한다. 그는 “자녀도 자기 삶이 있는데 용돈 달라고 못한다”면서 “잠자다 죽는 약이 개발돼서 얼른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1997년부터 서울역 극빈자를 위해 무료 목욕실, 세탁실, 이발실을 운영해 온 김흥용 남대문지역상담센터장은 말했다.

    “부양의 의무를 지는 자가 일정 수준의 돈을 벌면 피부양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부양의 의무를 이행하진 않습니다. 부양의 의무에서 벗어나고, 정부의 지원을 받고자 가족들, 자녀와 늙은 부모들은 서로 곁을 떠납니다. 그렇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노인은 그의 마지막 거처(居處)가 될 쪽방에 버려지는 겁니다. 쪽방촌은 자녀와 부모의 암묵적인 합의하에 만들어진 현대판 ‘고려장(高麗葬)’인 셈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9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