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爆沈)과 관련,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대북 금융제재에 대해 홍콩 정부는 23일 "북한 기업들의 활동을 면밀히 관찰하는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찾아냈다"고 본지에 확인했다. 또 북한 대풍그룹이 홍콩 정부에 신고한 위치에는 사무실도 직원도 없는 것으로 현장 확인됐다.

홍콩 상업경제국(CED) 조세핀 로(Lo) 대변인은 "홍콩 정부는 2007년 6월부터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해 왔고, 특히 올 1월부터는 새롭고 확장된 대북 제재를 위해 관련 규정을 심화시켜 집행해 왔다"면서 "그 과정에서 찾아낸 위법 사안들(violation of the laws)에 대해 홍콩 사법당국이 곧 적절한 액션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 대변인은 "거기에 (북한의) 대풍그룹도 포함되느냐"고 묻자 "개별기업에 대한 질문엔 대답할 수 없다"고 했으나, 홍콩에선 대풍그룹이 첫 번째 조치 대상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도 "홍콩 정부가 북한의 대풍그룹과 '조선펀드'를 포함한 북한 기업들의 관련 정보를 수집해 최근에 홍콩의 사법 당국에 넘겼다"고 23일 보도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추진과 관련, 미국과 한국 이외의 제3국에서 나온 가장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움직임이다.

북한 대풍국제투자그룹이 홍콩 정부에 신고한 사무실. 이곳에는 대풍그룹이 아닌 홍콩의 한 법률사무소가 있었다.

23일 오전 11시쯤 홍콩섬 퀸즈웨이가(街) 89번지의 리포센터 1번 타워 2508호. 북한 '대풍국제투자그룹'(대풍그룹)이 올 4월 25일 홍콩 정부에 접수시킨 '연례 신고서'에는 홍콩 사무실 위치가 이곳이고, 모회사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있으며, 자본금은 2000만홍콩달러(약 32억원)로 기재돼 있다. 하지만 2508호 자리엔 '호, 웡&웡(何, 黃&黃) 법률사무소'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25층의 사무실 10여개 중 '대풍'이란 현판은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 "대풍그룹이 이전하고 법률회사가 들어온 거냐?"고 묻자 한참 만에 나온 여직원은 "대풍그룹이 여기를 사무실이라고 홍콩 정부에는 신고했지만, 대풍그룹은 우리(법률회사)의 고객사일 뿐이고 여기에 대풍그룹 직원이 쓰는 방도 없고 출근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홍콩의 한 소식통은 "미국과 홍콩 당국이 곧 단행될 대북 제재 조치를 위해 현재 대풍그룹과 조선펀드를 포함해 5~6개 북한 관련 기업들의 수십개 계좌를 추적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그러나 2005년에 계좌 동결 조치를 취했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계좌들은 북한측이 대부분 폐쇄해 뭉칫돈이 오가거나 눈여겨볼 만한 계좌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대풍그룹은?

한·미 당국이 주목해온 대풍그룹은 북한의 공식적인 외자(外資) 유치 창구다. 북한은 지난 1월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위원장 김정일) 결정으로 "투자 유치 등을 수행할 대외경제 협력기관인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의 본부를 평양에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중(在中) 동포인 박철수(51)를 대풍그룹 총재 겸 부이사장으로 임명했다.

'달러 가뭄'에 시달리는 북한이 대풍그룹에 거는 기대는 이사진 7명의 면면에서 묻어난다. 이사장은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다. 김정일 통치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전일춘(김정일 고교 동창) 39호실장도 대풍그룹 이사다. 원동연 통전부 부부장과 로두철 국가계획위원장(부총리) 등도 이사를 맡고 있다.

중국 국적의 박철수를 앞세운 대풍그룹은 올해 초 '100억달러 외자 유치설' 등을 흘리며 중국·홍콩·한국 등에서 활발하게 움직였다. 특히 박철수는 지난 5월 홍콩 투자단 10여명을 이끌고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도 했다. 작년 10월 정상회담을 위한 싱가포르 남북 비밀 접촉 때 중개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