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 꿈, 그 속에 또 꿈… 상상력이 만든 영상 뛰어나

    입력 : 2010.07.22 03:06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SF 블록버스터 '인셉션'
    현실과 꿈 경계 수시로 넘나들어 한눈팔면 이야기 흐름 헷갈려…
    한스 짐머의 음악이 오싹함 더해

    고뇌하는 수퍼 히어로를 그린 수작(秀作) '다크 나이트'의 영향이겠지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인셉션(Inception·21일 개봉)'은 먼저 개봉한 할리우드에서 '지적이며 철학적인 블록버스터'란 찬사를 듣고 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뭘 또 그렇게까지'다. 꿈에서 또 꿈을 꾸고, 그 두 번째 꿈에서 또 꿈을 꾸는 이야기이다 보니 복잡하고 헷갈릴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IQ 테스트를 치른 듯하다. 지적(知的) 자괴감은 들지 않는다.

    기계장치를 이용해 여러 명이 동시에 꿈을 꾸면 꿈속에서 남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미래. 이런 '추출' 기술의 전문가인 코브(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일본의 기업 사냥꾼 사이토(와타나베 겐)로부터 거대 기업 후계자의 꿈에 들어가 '기업을 둘로 쪼개겠다'는 생각을 심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사이토는 그 대가로 아내를 살해한 누명을 쓰고 도피 중인 코브를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한다. 코브는 이 작전을 위해 꿈을 설계하고 침투할 팀을 짜서 기업 후계자 피셔(킬리언 머피)에게 접근한다.

    남의 꿈에 침입하려는 코브(오른쪽) 일행은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며 상대방과 맞선다.

    꿈속에서 다시 꾸는 꿈을 '꿈²'이라고 표기할 수 있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꿈⁴'까지 파고들어간다. 이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꿈의 최종 단계 이른바 '림보(limbo·천국과 지옥의 경계)'다. 현실의 5분은 꿈에서 1시간이며, 이 시간은 꿈속에서 다시 꿈을 꿀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고통을 비롯한 현실의 모든 감정은 꿈에서도 유효하다. 오직 죽을 때만 꿈에서 깨어날 수 있다. 꿈을 꾸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작은 팽이를 돌려보는 것이다. 팽이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돌면 꿈이다.

    이 정도 예습을 하고 가면 영화 보기가 훨씬 수월하다. 예습 없이 이 2시간27분짜리 영화를 보러 갔다가 잠시 졸거나 휴대전화 문자를 확인하다가는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리기 쉽다. 게다가 설명조의 대사가 무척 많다. 충분히 이해하려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영화가 끝나면 목이 마르고 피로감이 온다).

    제목이 '인셉션(출발)'인 것은 주인공들이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심는 작전을 하기 때문이다.

    중력의 법칙이 사라진 꿈속 복도에서 벌어지는 대결 장면. 360도로 회전하는 복도 세트를 만들어 무중력 상태와 비슷한 효과를 냈다. 배우들은 와이어에 수직으로 매달려 있는 상태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아버지 장례식을 위해 시드니에서 LA로 가는 기업 후계자와 같은 비행기에 탄 뒤 강력한 진정제를 먹여 재우면서 작전은 시작된다. 이 꿈속에서 승합차를 타고 도주하던 도중 다들 다시 한번 꿈속으로, 새로운 꿈에서 찾아간 호텔 방에서 또다시 꿈을 꾼다. 이 꿈의 미로 속에서 남의 꿈에 침투하려는 자와 무의식적으로 전사(戰士)를 만들어 대적하려는 자의 대결이 이 영화의 큰 구도다. 그 대결 속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무의식과도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이야기가 복잡하다보니 각 꿈의 배경을 판이하게 만들어 관객이 '꿈'과 '꿈²'을 헷갈리지 않도록 배려했다. 일본과 프랑스, 캐나다, 모로코를 누비며 영화를 찍은 것은 이 때문이다.

    꿈에서는 모든 상상이 가능하다는 전제 아래 만들어낸 영상들은 뛰어난 볼거리를 준다. 도시의 절반이 수직으로 서거나 시내 한복판에 대형 기관차가 질주하는 장면은 이제 영상미의 관건은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라 아이디어임을 입증한다.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무중력 상태의 주먹 대결, 착시현상을 이용해 끊임없이 오르기만 할 것 같은 '펜로즈의 계단'에서의 액션 장면도 재미있다. '꿈의 미로'를 깡그리 잊고 영상만 봐도 꽤 재미를 느낄 정도다.

    한스 짐머의 음악도 이 영화에서 무척 인상적이다. 종종 음악보다 굉음에 가까운 그의 곡들은 관객마저 꿈의 블랙홀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오싹함을 준다. 주인공들이 꿈에서 강제로 깰 때 듣는 노래가 에디트 피아프의 '장밋빛 인생'인 것은 기묘한 부조화다.

    결국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과 재회한다. 습관처럼 그는 식탁 위에 팽이를 돌린다. 팽이가 멈출까, 계속 돌까. 영화관에서 확인할 일이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