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미래의 한·미동맹을 좌우할 중국 변수

    입력 : 2010.07.20 23:13

    강인선 정치부 차장대우
    2010년 7월 한·미관계를 보고 있으면 양국관계가 이렇게 '뜨거웠던' 시절이 있을까 싶다. 우선 한·미동맹 57년 만에 처음으로 양국 외교·국방장관이 모이는 '2+2 회의'가 열린다. 2+2는 한때 미국이 아시아에선 일본과만 개최한다고 해서 한국이 부러워했던 그 회의다(그러나 미·일의 2+2회의는 2006년 이후 중단됐다).

    방한 중인 미 국방장관은 "북한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전례없이 긴 기간인 사흘을 머문다고 하고, '떠다니는 군사기지'란 별명을 가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도 부산항에 입항한다. 이달 말 동해 한·미 연합훈련엔 북한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가 참가한다. 그뿐인가. 한·미는 이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시기를 3년7개월 뒤로 연기하기로 합의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칭찬하기에 열심이다.

    동맹의 역사에서 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우호적인 요즘 한·미관계엔 이명박·오바마 대통령의 개인적인 호감과 신뢰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서로를 '친구'로 생각한다는 두 지도자가 한·미관계가 매끄럽게 굴러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이렇게 순조로운 한·미관계에 별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이 모든 장면이 어디서 많이 본 낯익은 광경이기 때문이다.

    2001년에서 2006년까지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 시절의 미·일관계가 꼭 이랬다. 부시와 고이즈미는 찰떡궁합이었고 미·일은 밀월관계였다. 부시와 고이즈미가 너무 친해서, 혹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실무선에서 검토가 끝나지도 않은 사안을 덜컥 합의해 버릴까봐 참모들이 전전긍긍했다고 할 정도였다.

    부시는 텍사스주에 있는 자신의 크로퍼드 별장에 고이즈미를 초대해 자신의 트럭에 태우고 다녔다. 웬만큼 친하지 않으면 부르지 않아 외국정상들 중에도 크로퍼드 별장에 초대받은 사람은 몇명 되지 않았다. 부시는 고이즈미의 생일을 기념해 같이 엘비스 프레슬리의 생가를 여행하는 '선물'을 했다. 유별난 우정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미국에게 이전보다 더 중요한 나라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일본이 '마침내'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인 영국과 비슷한 급의 동맹국으로 격상됐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불과 몇년 되지 않아 양국의 지도자가 바뀌고 미·일 사이는 급랭했다. 특히 하토야마 전 총리가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를 내세우며 출범한 이후 미·일관계는 1990년대 무역분쟁 이후 최악이라는 상태가 됐다. 워싱턴의 아시아 전문가들조차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국과 일본의 처지가 어떻게 이렇게 뒤바뀔 수 있느냐"고 놀랄 정도의 변화였다. 국제정치 무대에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말은 또 맞아들었다.

    물론 미·일 관계는 앞으로 계기만 생기면 또 예전 못지않은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미관계는 지난 정부에서 그랬듯 언제든 껄끄러워질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라면 '중국' 변수다. 천안함 격침 사건 이후 외교무대에서 북한에 책임을 묻고 규탄하려던 우리 노력은 중국이란 벽에 부딪혀 좌절됐다. 중국이 최근 한·미가 서해에서 실시하려던 연합훈련에 강하게 반발하는 사례에서 보았듯이 중국도 이전과는 달리 복잡한 시선으로 한·미관계를 보고 있다. 중국변수는 앞으로 한국외교가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됐다. 한·미동맹의 힘은 결국 한·미가 중국변수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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